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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평신도의 교회

이창훈 알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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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가 가져다준 주요 변화 가운데 하나는 평신도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한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평신도는 교회 안에서 성직자, 수도자에 이어 언제나 끝자리였다. 교회는 세속과 담을 쌓았다. 교회는 거룩한 곳이고 세속은 말 그대로 속된 곳이다. 교회는 사실상 가르치는 교회와 가르침을 받는 교회로 나뉘어 있었다. 성직자는 당연히 가르치는 교회에 속했고, 평신도는 언제나 교회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수동적 존재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이런 교회관의 획기적 전환을 이룩했다. 공의회는 교회를 무엇보다도 하느님 백성으로 이해했다. 세례를 통해 하느님 자녀로 태어난 이들은 모두 똑같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품위를 지닌다. 지체들 사이에 다양성이 있고 역할의 차이(성직자, 수도자, 평신도)가 있지만, 하느님 자녀로서의 동등한 품위 자체에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다.(「교회헌장」 2장 참조) 평신도에 이렇게 달라진 이해를 가져다주었기에, 어떤 이들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관을 ‘평신도의 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신도의 교회’라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한국 교회다. 한국 교회는 시작부터 평신도가 주역이었다. 가까운 중국과 일본만 하더라도 선교사들이 들어와 선교 활동을 함으로써 교회가 시작됐다. 하지만 한국 천주교회는 진리를 목말라한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복음을 공부하고 신앙을 받아들여 시작했다. 가성직 제도, 성직자 영입을 위한 각고의 노력, 그리고 무수한 신앙 선조들이 목숨 바쳐 지킨 신앙 또한 한국 교회를 평신도의 교회라고 부르는 데 손색이 없다.

평신도의 교회라는 한국 천주교회의 면모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도 잘 드러난다. 공의회가 폐막한 지 채 3년이 되지 않은 1968년 7월 23일 평신도 사도직을 촉진하고 뒷받침하는 전국 조직인 한국 가톨릭 평신도사도직 중앙협의회(이하 한국평협)를 설립했다. 공의회에서 제시한 평신도 사도직의 활성화를 위한 한국 교회의 구체적인 노력이었다.

주교단은 그해 한국평협의 건의를 받아들여 해마다 대림 제1주일을 평신도의 날(평신도 주일)로 지내도록 했는데, 한국 교회 설립 주역의 한 분인 이승훈(베드로)이 천주교를 더욱 깊이 알고자 1783년 동지사(冬至使) 일행을 따라 북경으로 들어가던 때가 이즈음이었기 때문이다. 이 땅에 복음을 받아들인 신앙 선조들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에 평신도의 날을 지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2년 후부터 평신도 주일은 연중 마지막 주일 전 주일로 옮겨 지내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의회가 끝난 지 반세기가 더 흐른 지금 한국 교회는 외형적으로는 눈부신 발전을 이뤘고, 다른 나라 교회들로부터 역동적인 교회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 교회가 ’평신도의 교회’인가 하고 묻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을까. 마침 한국평협이 내년 50주년을 뜻있게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다양한 기념행사나 기념사업도 좋지만, 그보다는 공의회에서 제시한 평신도 사도직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평신도의 교회’가 되는 데 필요한 작업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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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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