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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의 어른은 진보다] 몽당연필(夢當緣必)

김경집 바오로(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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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 쓸 일이 별로 없다. 그나마 가끔 쓰는 것도 샤프펜슬이니 연필 깎을 일도 없고 손마디만큼의 몽당연필을 빈 볼펜 통에 끼워 쓰는 일은 아예 없다. 아이들은 아예 본 적이 없으니 화제로 올리는 것 자체가 무망하다. 말해봐야 꼰대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그렇게 몽당연필은 일상뿐 아니라 기억의 창고에서도 사라졌다. 그러다 전혀 다른 몽당연필을 만났다. 사돈 될 분이 서예 전시회에 출품한 작품 가운데 ‘몽당연필(夢當緣必)’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상견례 때 그걸 말씀드렸더니 인터넷에 회자된 문구라며 ‘꿈은 반드시 이뤄진다’는 뜻이란다. 가난한 필기구 몽당연필은 이제 추억으로 사라지고 새로운 의미로 태어난 셈이다.

꿈이 없는 삶은 생물학적으로는 살아있더라도 의미론적으로는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다. 꿈이 없으면 설렘도 없고 삶의 생기도 없다. 어떤 이는 꿈은 이뤄질 수 없기에 무망한 바람이며 에너지의 낭비라고 찬물을 끼얹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꿈을 꿀 권리가 있고 그 꿈을 실현해야 할 자존의 의무가 있다. 그 꿈이 있기에 힘든 현재를 버티고 견딜 수 있으며 꿈을 향해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간다. 밤하늘의 북극성을 딸 수는 없어도 그 별을 보고 길을 찾는 것처럼 꿈은 캄캄한 삶과 세상의 길잡이다. 크건 작건 꿈을 이룰 때 우리는 삶의 환희를 누린다. 설령 그 순간이 짧더라도 평생 잊지 못할 감격을 맛본다.

불행히도 지금은 청년들이 꿈을 실현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꿈은커녕 당장 생계를 해결할 일자리 얻기가 난망하고 어렵사리 얻은 일자리도 형편없거나 언제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 그런 삶에서 꿈은 사치고 거짓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의 꿈이 ‘정규직’인 사회는 잔혹하다. 정규직, 비정규직으로 삶이 구획되고 한번 그 올무에 갇히면 끝내 벗어날 수 없는 사회는 끔찍하다. 그게 눈앞에 놓인 현실인 청년들에게 우리는 꿈을 꾸라고, 꿈은 이루어진다고 의연하게 말할 수 있는가? 아무리 제대로 가르쳐도 아이들이 학교를 떠났을 때 불합리한 여건 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일하도록 강요되는 세상에 살게 하는 건 범죄행위다. 어른들은 그들의 꿈을 빼앗은 것에 대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 꿈꾸라고,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달콤하게 속삭이기 전에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어른들의 책무다. 꿈꿀 수 있으려면 편히 잠잘 수 있는 환경부터 만들어야 한다. 그런 것들은 무시하고 꿈 타령만 하는 어른들은 비겁하다.

복음은 꿈이고 당당한 현실이며 실천해야 할 신앙의 의무다. 착취와 왜곡, 억압과 탐욕을 비판하고 맞서 싸울 수 있는 힘이 복음에서 나온다는 신앙 고백이 우리들의 소명이다. 불행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쓰러지는 건 약자들이다. 그걸 방치하는 건 복음을 배반하는 것이다. “가난과 불평등 문제는 경제 문제가 아니라 신학 문제다”라는 프란치스코 교종의 말씀을 새겨야 한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몽당연필’이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복음의 실천이다. 아이들이, 청년들이 꿈을 꿀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는 기도가 비로소 가능하다. 코로나 팬데믹이 몰고 올 쓰나미에서 약자를 먼저 구해내고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복음의 실천이 더더욱 절실한 지금이다. 교회가, 신자들이 그 몫을 먼저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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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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