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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변하지 않으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김원철 바오로(보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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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탈리아 통일운동의 영웅 가리발디 장군이 1860년 5월 마침내 의용군을 이끌고 시칠리아까지 진격했다. 왕정 붕괴와 귀족의 몰락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이 섬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 살리나가(家)의 돈 파브리치오 공작은 판세가 기운 것을 보고 절망감에 빠졌다. 이때 조카 탄크레디가 역사의 조류 방향이 바뀐 현실을 외면하려 드는 외삼촌에게 외치듯 말했다. “변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변해야 해요.”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소설 「표범」을 읽을 때 탄크레디의 이 말이 하도 인상 깊어서 형광펜으로 표시를 해두었다. 파브리치오 공작은 변화가 두려웠다. 대대로 가문의 영광을 지탱해 준 부와 권력을 잃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멈춰 있는 시간과 역사란 있을 수 없다. 시간은 쉼 없이 흐른다. 역사도 뒷걸음치든 앞으로 가든 늘 요동치며 세상 풍경을 바꿔놓는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작가의 이 표현이 퍽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지난해 연말 교황청 관료들과 성탄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이 구절을 인용해가며 교황청 조직 개편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이탈리아의 유명한 소설에 나오는 수수께끼 같은 표현이 기억납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면,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합니다.’”(2019년 12월 21일 연설)

가톨릭교회가 시대 변화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교리를 고집한다느니, 너무 안이하게 생각한다느니 하는 비판도 종종 받는다. 그렇다고 교회가 카멜레온처럼 외부 환경 변화에 예민하게 대응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교회가 지난 2000년간 세상이 요동칠 때마다 발 빠르게 적응했다면 지금 교회의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 아마도 신앙의 진리는 누더기가 됐을 것이다.

코로나19로 인해 세상이 많이 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진다. 신조어 만드는 데 천부적 재능이 있는 이들은 “세상이 코로나19 이전(BC; Before Corona)과 코로나19 이후(AC; After Corona)로 나뉠 것”이라고 예측한다.

교회 안에서도 최근 ‘코로나19 이후의 교회’에 대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예언자적 목소리 같은 공감도 100 전망이 있는가 하면, 숲은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고 하는 단편적 주장도 있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얘기는 교회도 달라져야 하고, 또 어쩔 수 없이 달라지리라는 것이다. 코로나19는 이미 몇 달 만에 교회 모습을 많이 바꿔 놨다.

한국 교회도 코로나19 이후에 대해 본격적으로 숙의해야 한다. 키워드는 ‘변화’가 될 것이다. 변화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은 과거에 있었던 수많은 변화의 결과물이 아닌가. 변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다.

변화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과 ‘변해야’ 하는 것을 잘 구분하는 일이다. 변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당연히 신앙의 핵심적 요소다. 즉 복음 말씀과 전례, 성사와 친교다. 반대로 변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태도다. 익숙한 것에 안주하려는 나태함은 버리고, 생기를 잃어가는 복음 선포 방식은 바꿔야 한다. 시대의 징표를 찾는 데 점점 둔해지는 시력은 하루빨리 교정해야 한다.

뜨겁게 토론하고 냉철히 식별하는 공론의 장을 열자. 시대 적응이라는 미명 하에 “목욕물 버리려다 아기까지 같이 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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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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