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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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진의 사람 그리고 사진] ‘그곳’에 사람이 있다

임종진 스테파노(사진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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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되면 기억이 되살아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이 사는 곳은 다른 곳도 아닌 북녘땅. 자동차로 내달리면 불과 두 시간이면 닿을 곳에 살지만 내 머문 자리와의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아주 멀다. 오래전 언론사 사진기자로 온갖 ‘곳’들을 가리지 않고 다니던 시절. 북한은 내게 갑자기 열린 신세계였다. 지난 1998년 가을에 처음 발을 딛게 된 뒤 2003년까지 모두 합쳐 여섯 차례나 둘러보는 행운이 잇따랐었다. 대규모 행사가 아닌 개별적인 취재였고 평양만이 아닌 함경도, 양강도, 황해도 하다못해 북쪽 길로 오른 백두산 등등. 꽤 여러 지역을 다양하게 둘러볼 수 있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북녘 하늘 아래 ‘온갖 곳’을 다녔지만 그래도 기억 속에 크게 남아있는 것은 역시 ‘사람’이다. 괜한 상념의 바다에 허우적거리는 이 가을 한복판에 나는 그들 북녘 친구들이 그립다.



얼마 전 언론들의 보도를 통해 지난 10월 10일 북한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식장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발언한 연설을 유심히 듣게 되었다. 특히 “인민에 미안하다”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나 “사랑하는 남녘 동포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보낸다”며 “다시 두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찾아오기를 바란다”는 연설의 일부 내용은 지난 방북 취재의 기억들이 모두 되살아나게 하는 벅찬 감흥을 느끼게 했다. 이에 대한 일부 언론의 한결같은 부정적 평가와는 다르게 들뜬 감흥을 느낀 이유는 결국 지금도 북녘땅 위에 숨 쉬고 있을 사람들, 특히 인연의 깊이가 가볍지 않은 몇몇 지인들 때문이다.

모두 여섯 차례의 방북취재 기간 대부분 같은 북측 안내원들과 일정을 함께했다. 그들은 감시자가 아닌 ‘길 안내인’이었고 무엇보다 북녘 동포들의 평범한 일상성을 들여다보며 우리 민족의 동질적 형상들을 사진찍기 바쁜 나의 열렬한 지지자요 응원단이었다. 그들과 나눈 대화들은 여전히 귀에 들릴 정도로 선명하다. 특히 ‘림 선생 사진은 다 좋은데 거 우리네 늠름한 인민군 소좌들을 헤벌레 웃는 얼굴로 찍어서 내믄 어떡합네까?’라고 하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불만’을 털어놓던 날이 있었다. 북한에 대한 우리의 경직된 고정관념을 누그러뜨리려는 나의 의도를 설명하기 위해 ‘룡성맥주’를 잔뜩 사 들고 ‘보통강’ 강변 공원으로 데리고 가 밤새 벌인 ‘음주 토론’ 자리는 꽤 유쾌했던 기억이다. 자꾸 그러면 다신 안 오겠다며 필름을 던지는 나의 ‘반협박’에 그들은 ‘아이고 림 선생 아니 아우님! 왜 그러네? 잘 알아들었으니 자주 오라우!’ 하면서 주섬주섬 필름을 주워 주기도 했다. 그들은 ‘내나라비디오사’의 촬영기사인 김일연씨와 ‘민족화해협의회’ 과장이었던 리경철씨 두 사람이다. 손윗사람인 그들을 나는 ‘형’이라고 불렀고. 그들은 나를 ‘아우’로 여겼다. 두 사람 중 특히 일연이 형님과의 인연은 꽤 깊다.



얼마 전 그가 찍어서 만들어준 비디오테이프를 20년 만에 발견하고 흥에 겨워 콧노래를 불렀다. 내 일정 대부분을 찍어 편집까지 마친 뒤 선물로 남겨 준 것이었다. 영상 속의 나는 한참 젊었고 열정이 넘쳤으며 우리 민족을 위해 나름의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로 가득했다. 그는 동영상으로 나의 존재성을 남겨주었고 나는 사진으로 당신에 대한 ‘정’을 담아주기도 했다. 북한에서 종종 그의 모습들을 담아둔 것은 물론 지난 2001년 금강산에서 열린 ‘노동절기념 남북통일노동자대회’때 그리고 그해 서울에서 열린 ‘평양교예단’ 방문공연에 동참해 처음 서울에 왔던 모습까지…. 일연이 형은 내게 머리에 뿔난 북한사람이 아니다. 동네 형이자 절친한 선배의 형상으로 기억과 증명의 도구인 사진 속에 어김없이 남아있다. 시간이 세월이 된 탓일까. 하얗게 세었을 형의 곱슬머리가 유난히 궁금해진다.

‘분단’은 ‘이음’을 전제로 존재한다. 원래가 하나였으며 과정이 어떠하든 다시 하나가 되려는 본능의 기제라는 속살을 운명처럼 지니고 있다. 살과 피의 동질성은 애초부터 사라지거나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쉬운 일이 아님을 모르지 않으나 이념과 체제의 두께가 조금씩 옅어감을 느끼는 요즘, 그리움이 더불어 용솟음친다. ‘그곳’에 사람이 있는 탓이다. 꽤 괜찮은 가을이다.



임종진 스테파노 (사진치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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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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