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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배고픈 분노의 영성 / 조욱종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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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프면 분노하고 차별하면 저항한다. 인간의 일반적인 감정이다. 그래서 이러한 인간의 감정을 정치인들이 잘 이용하기도 한다. 통치의 기술로 활용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가난해도 먹을거리 걱정은 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독재정권의 고도의 억압통치술이다. 그와는 달리 차별금지를 법으로 제정하는 데에만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도 평등한 문화를 만든다면 그건 진정한 통치술이 된다. 미국에서 싼 농산물 가격에 놀랐고 차별이 은연중에 잔존함에 실망한 것은 이러한 기준에서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농산물 가격을 통한 왜곡적인 통치술이 발휘되었고 지금도 그 여파로 힘들어 한다. 그중의 하나가 1970년대에서부터 시작한 이중곡가제이다. 추곡수매 제도로써 정부가 쌀을 높은 가격에 수매해서는 도시의 소비자들에게 싸게 공급하는 정책이다. 도시의 공장에서 일할 싼 노동력을 확보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의 노동력을 도시로 유인하였지만 도시노동자들이 지나친 저임금에 분노하니까 이를 잠재우기 위해 만든 제도였다. 그러면서도 추곡수매가는 여전히 낮은 가격에 묶어 두었기 때문에 한국의 농업생산구조는 계속 악화일로를 걷게 되었다.

배고프면 분노하고 차별당하면 저항한다. 1960년대 이후의 한국 농촌현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고 저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1972년 시작한 한국가톨릭농민회는 농협의 민주화 요구 함평 고구마 피해사건 경지정리 피해보상 등등 생존권 투쟁과 올바른 농업정책을 위한 활동의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일반 농민들도 가톨릭농민회의 활동에 지지를 보내고 동참하는 농민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으로 확대되었고 그러자 가톨릭농민회는 새로운 운동을 준비하게 되었다. 그것은 대안운동으로써의 생명운동이었다. 이제 정치적 활동은 많은 사람들이 관심 가지게 되었으므로 전농에게 맡기고 아직 관심 가지지 않는 그러나 정말 중요한 문제인 생태계 파괴를 막고 생명을 살리기 위한 생명운동에로 나아가기로 한 것이다.

농사를 지으면서 농약과 제초제에 의한 생태계 파괴를 직접 몸으로 겪은 체험들이 이들을 새로운 선택을 하도록 만들었지만 유기농에 의한 생명운동이 얼마나 힘든 고난의 연속인가를 잘 아는 농민으로서 이를 선택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러나 하느님을 알고 있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었다.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과 친교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박해를 무릅쓰면서도 가난한 농민들을 위한 투쟁에 앞장섰으며 더 나아가 생명농업을 선택한 이유 역시도 하느님을 알고 하느님과의 친교 안으로 들어가는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느님과의 친교를 통해 세상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는 깊은 정신을 가지게 되는 것을 영성이라고 할 때 가톨릭농민회원 그들이야말로 영성을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의 영성은 배고픈 자의 분노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스스로 가난을 선택하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형성된 영성이다. 그래서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가난한 자 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하느님 나라에 들기 위해 스스로 가난을 선택함이 바로 영성이니 우리 시대에 우리와 함께 사는 이들에게서 발견하는 영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는가.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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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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