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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화해 일치] 여기 반동들이 있어요 / 나명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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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원을 퇴소하고 하룻밤을 지낸 어느 북한이탈주민이 아침에 베란다 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나서 잠이 깼다고 한다. 하도 시끄러워 창문 틈으로 보니 몇몇 사람들이 모여 무엇인가 열띤 논쟁을 하고 있는데 대통령의 국정운영 능력과 자질 정부의 시책 등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는 내용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114에 ‘분주소’(한국의 파출소) 전화번호를 물어 전화해서 “여기 반동들이 있어요”라고 고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참을 웃었다.

그에게는 그 상황이 자못 심각했을 것이다. 북한 주민의 시각으로는 한 국가의 지도자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으로 왈가왈부한다는 것은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또 ‘어머니인 당’에 대해 불만을 토로할 경우 고발 당해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는 신세가 될 수 있는 환경에서 많은 시간을 살다 온 그에게는 당연한 행동이었던 것이다.

자유를 찾아 남한에 온 탈북민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만일 ‘김일성’에 대해 존칭이 없거나 폄하하는 내용을 언급한다면 그리 좋은 첫인상을 남기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탈북민들에게 있어 ‘김일성’은 아직도 전능적인 만능의 존재고 최상의 존경과 경외의 지도자로서의 추억과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김일성의 외교적인 능력 가는 나라마다 환영받는 모습 친절하고 겸손하게 먼저 악수를 청하는 모습에 북한주민들은 호감을 느꼈다.

적어도 김일성이 집권하던 당시에는 공산품 상점에 옷들이 차고 넘쳤고 수산물 상점에서 정어리를 비롯한 물고기를 싼값에 먹을 수 있을 만큼 살만했다. 냉동명태도 한 틀씩 집안 창고나 베란다에 쌓아놓고 먹었던 기억을 지니고 있다. 김일성의 생일인 ‘봄축전’ 때 찾아 온 외국 축하객들을 보고 멀고 먼 나라에서 얼마나 수령님이 좋았으면 이렇게 축하하러 오나 생각하며 행복해 했다고 한다.

북한주민들은 1960년대 남한의 간호사와 광부들이 독일로 일하러 가는 광경을 보고 김일성이 없었으면 우리도 저런 처지에 놓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탁월한’ 리더십을 찬양하면서 ‘하늘이 내린 분’이라고 여기며 살았다.

무엇보다도 탁아소 시절부터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경애하는 수령 김일성 대원수님 고맙습니다”라고 인사하는 법부터 배웠다. 이뿐 아니라 ‘김일성 도록 경연’ 인민(초등)학교 때는 ‘김일성 원수님의 어린시절’이란 책을 통해 그의 삶을 줄줄이 꿰고 있다. 부모님 이름과 생년월일을 대라고 하면 당황해서 대답을 못해도 김일성의 생일을 물어보면 세 살짜리 아이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4월 15일 태양절’이라고 대답할 정도다.

각 도 ‘김일성동지 혁명역사박물관’은 최고의 시설과 생생한 현장감으로 그의 혁명역사과정을 학습하게 한다. 김일성에 대해 한평생 인민을 위해 헌신하다 죽었고 인민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가만있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을 거의 누구나 가지고 있다. 이런 북한주민들의 마음 깊이까지 우리가 들어가기에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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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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