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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성심원에서 보낸 2박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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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으로 마지막 겨울 신앙학교를 떠나던 2000년 1월 고등학교 3학년 진학을 앞둔 나는 신앙학교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다. 얼마 되진 않았지만 싸놓은 짐을 몇 번이나 풀고 또 싸고 출발시각에 늦겠다며 야단치시는 엄마의 등쌀에 못 이겨 배낭을 둘러메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었다. 신앙학교를 준비하면서 한센병에 대해 어설프게 배운 것이 적잖게 부담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살이 썩는다” “옮을 수 있는 병이다” “접촉하지 않도록 조심해라” 등등 한 달 전부터 친구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바치며 나병에 대해서 공부했지만 다들 너무 어설프게 배웠었나 보다. 아니면 나만 어설프게 이해하고 겁에 질렸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아침부터 진을 뺀 나와 친구들은 경남 산청에 있는 성심원에 무사히 도착했다. 흐린 날씨 탓일까 기분 탓일까… 성심원 전체가 더 음산하게만 느껴졌고 두렵다는 생각이 가시지 않았다.

수사님의 안내에 따라 성심원 내부를 둘러보고 교육관에 짐을 풀었다. 내 기억으로 친구들과 동생들 모두가 무언가에 홀린 듯 솔직히 떨고 있었던 것 같다.

성당에서 선생님들로부터 전해 들은 성심원은 조금 충격이었었다. 소록도 외에 한센인들을 위한 곳이 있는지도 몰랐고 시력을 잃어 색안경을 끼고 손가락과 발가락은 문드러져 있다는 이야기가 마냥 걱정스러웠다. 나환자를 고쳐주신 예수님의 모습을 떠올려 본 적은 있지만 실제로 한센인을 대면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기에 걱정이 앞섰다. 첫째 날은 그렇게 혼란스럽게 넘어갔다.

둘째 날 아침 조별로 봉사활동을 진행한 우리는 각자 맡은 일을 하기 위해 흩어져 성심원 각지로 갔다. 어르신들의 말동무가 되기도 하고 청소 등 맡은 소임을 다하고 있을 때 치료실에서 한 여학생을 만났다. 여학생은 혼자서 겨울방학 한 달을 성심원에 머물면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었다. 아무 거리낌 없이 한센인들의 상처를 소독하고 그들과 이야기 나누며 정을 나누는 모습의 그 여학생을 보며 하느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었다. 두려워만 했던 나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마지막 날 오전 함께한 이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성심원 한센인 모두와 천사 여학생을 위해서 기도했다. 그녀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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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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