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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피로사회에서 본 놀이신학 / 문영석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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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요즘 모두가 피로하다. 한국은 노동시간이나 학습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긴 나라이다. 당연히 어른이나 아이나 수면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18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가장 짧다. 한국인들은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적 성취를 이루었다. 이런 성취가 치열하게 일했던 한국인의 근면성에 기인한 것은 분명하지만 또 한편 이토록 치열하게 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일했는데 이 정도도 못 산다면 그게 정상일까? 그토록 열심히 일했는데도 한국경제를 쌓아올린 주역 역할을 했던 한국의 노인 복지는 세계 91개국 가운데 67위라고 하니 민망할 따름이다.

무한 경쟁이 일상화된 현대 사회에서 성공하기 위해 무조건 ‘하면 된다’는 식의 저돌적인 자세로 자기 자신을 무한히 혹사시키다 보면 쉬거나 여가를 향유하는 것을 소홀하게 만든다. 오히려 쉬고 있을 때 불안하고 일터에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하다면 전형적인 일중독 증상이다. 극단적 효율성과 생산성을 요구하는 사회구도 속에서 한국의 직장인 85는 몸과 마음이 피로한 나머지 극도의 무기력증을 느끼는 ‘번 아웃’ 즉 ‘소진(消盡)증후군’(Burnout Syndrome)을 겪은 경험이 있다고 한다.

누적된 피로가 중첩되어 어느 한계를 넘어서버리면 어느 날 갑자기 무중력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만사가 시들하게 보이고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 마치 전압에 과부하가 걸리면 퓨즈가 끊어져버리듯 우리 심리상태도 마찬가지이다. 소진증후군의 전형적인 특징은 삶의 의미가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삶의 의미를 제공하는 감성에너지가 완전히 고갈되어버린 데서 오는 결과이다.

소진증후군은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 직장 사회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소진된 개인이 모이면 ‘피로사회’가 된다. 역으로 피로한 사회는 개인을 소진시키게 만든다. 이렇듯 개인과 사회 시스템은 마치 다람쥐 쳇바퀴 돌듯 끊임없이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다 보니 소진증후군이 마치 전염병처럼 한국사회에 번져나가고 있다. 소진증후군은 단순한 개인의 심리적 문제가 아닌 사회적 시스템의 문제로서 조직과 사회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피곤한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나고 ‘소진증후군’ ‘피로증후군’ ‘적응장애’ ‘우울증’ 등 여러 가지 심리적 질환들이 한국사회에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휴식이나 여가는 단순한 시간 낭비가 아니다. 목전의 이익을 계산하는 데는 그토록 영악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삶에 대한 계산은 왜 그렇게 둔감할까? 미국 듀크 대학교는 충분한 수면을 취하지 못한 성인의 뇌는 다른 비교 그룹에 비해 보다 더 빨리 노화되며 더 빨리 치매 증세를 보인다는 결과를 소개하고 있다. 결국 뇌의 노화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쉽고 저렴한 방법은 충분한 휴식과 수면이다.

하느님은 자신이 지으신 피조계의 모든 조물들이 놀이를 하도록 설계하셨다. 성경에 보면 동물들의 놀이(시편 104:24-26 욥 40:19-20)와 어린이들의 놀이(즈카 8:4-5)를 증언하고 있다. 성경에는 안식일 축제 그리고 춤 등의 연합이 놀이 신학의 기본으로 설정되어 있고 놀이와 음식이 적절하게 배합되어 축제를 구성하고 있다. 인간의 일상 리듬을 잘 배합하여 안식일과 기타 종교적 축제일을 설정하고 축제의 목적과 기능을 배열하고 있다.

안식일은 휴식과 여가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보여주는 예이다. 안식일이야말로 노동과 휴식이라는 삶의 리듬을 통해 인간이 하느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즐거움을 보여준다. 당연히 축제에 음식과 놀이가 빠질 수 없으며 성경적 전망에서 본 축제의 흥겨움은 바로 인간이란 ‘축제의 인간’(homo festivus)임을 보여준다. 그래서 도로시 베스는 “놀이야말로 안식일을 준수하는 가장 좋은 표상”이라고 말한다. 심각하고 비탄에 잠겨있는 세상에서 교회는 의미 있고 흥겨운 놀이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데 온 역량을 쏟을 필요가 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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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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