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방주의 창] 혼인 일상 안에서 걷는 거룩함의 여정 / 신정숙 수녀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꽃 지는 자리마다 스며드는 싱그러운 초록 위로 쏟아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그 눈부신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는 신랑과 신부의 행복한 모습이 참 예쁘다! 지나가며 바라보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은은한 미소가 피어난다.

서로 손을 마주 잡고 인생의 새로운 지평을 향한 출발선상에 서 있는 한 쌍은 보는 사람들의 마음 안에 저절로 사랑과 믿음 희망을 일깨우고 축복과 은총을 빌어주게 만든다. 왜 그럴까?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가 되고 가정을 이루는 일을 옛 어른들은 인륜지대사라고 불렀다. 요즘은 많이 변했다 해도 모든 문화권과 사회 안에서 혼인은 인간의 전 존재와 생애 행복과 관련되는 깊은 의미를 갖는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사랑으로 창조하셨고 당신의 ‘모상’으로 창조하셨다. 즉 사람 안에서 삼위일체를 닮은 상호간의 사랑과 자기를 아낌없이 거저 내어주는 사랑이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신다. 사람은 사랑할 때만 자기를 실현한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의 소명 특히 세례 받은 모든 사람들의 소명은 사랑하는 것이다.

세례 받은 남자와 여자는 혼인성사에 의해 부부로 축복된다. 혼인성사는 우리와 하나가 되고 우리와 같아지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사랑의 신비를 표현하고 실현한다. 부부는 마치 성체성사의 빵과 포도주같이 성령의 은총으로 축성되고 구체적인 삶 안에서 살아가는 사랑의 관계다. 부부는 이 축성된 관계 안에서 사랑을 맞아들이고 사랑으로부터 영양을 공급받으며 사랑 자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또한 부부는 어떻게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지를 구체적으로 나타낸다. 하느님은 당신과 너무나 다른 우리의 다름을 존중하는 가운데 사랑하신다. 그와 같이 부부도 서로의 상이성과 차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하느님의 유일한 계획인 친교라는 공동의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랑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친교의 계획을 위해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름과 상이성을 받아들일 때 인격과 인격 간의 깊은 친교가 실현된다. 오늘날 사회 문제의 핵심은 참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면서 서로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내가 사랑해야 하는 인격이며 이 인격의 존엄성이 갖는 참된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 모든 사회적 행위의 미덕이다. 가정은 이러한 사회적 행위의 미덕을 수호하고 지키는 파수꾼이다. 이 혼인의 성사성이 남자와 여자라는 실재의 내용이 된다. 혼인성사는 인간적 사랑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선포하고 풍요롭게 하고 그 사랑을 수호하고 구체화한다. 사랑은 하느님과 함께 인간들의 생명이 솟아나게 하는 생명의 샘이다. 사랑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의 방식이며 생명이 진행되어 가는 여정 그 자체다. 그러므로 모든 부부의 사랑은 하느님의 사랑이 머무는 감실이 된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신다(1 요한 4 6).”

오늘날 가정 교회의 으뜸 사도직은 혼인의 고유한 정체성을 부부들에게 알려주어 그들이 일반적인 사랑이 아니라 인격적 사랑을 살아가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부부를 중심으로 가정에서 자녀들을 이런 사랑으로 양육하고 교육하는 가운데 사랑을 알려주고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5-05-24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6

마태 18장 22절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