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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하느님께서 차려주신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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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고3이 된 베드로는 친구 한 명을 집에 데려왔다.

“할아버지네 집이 용인 민속촌 근처인데 버스를 놓쳤어요. 오늘 여기서 자고 학교에 같이 갈게요.” 해서 흔쾌히 허락했다. 그런데 다음날도 그 다음 날에도 또 데려왔다. 어찌 된 일일까?

“혹시 집 나온 거 아니니?”하고 물었더니 자초지종을 털어놓았다. 사연인즉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가족이 모두 뿔뿔이 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부모님은 시골로 농장일을 하러 내려가고 누나는 서울로 가고 친구만 혼자 남게 되었던 것이다.

그간 먼 친척 할아버지 댁에서 지내며 학교까지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했다. 너무 멀고 힘들어서 친구집에서 기거하게 되었는데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고 했다. 베드로가 독서실에서 같이 공부하다가 이 사연을 듣고는 집으로 데려오게 되었단다. 그래도 그렇지 한마디 상의도 없이 며칠 뒤 그 친구의 어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같이 내려가자고 했는데 학교와 친구들이 너무 좋아서 안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두고 왔다고 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요. 이 은혜 잊지 않을게요”라며 울먹이는 어머니에게 “괜찮아요. 밥상에 숟가락 하나만 더 얹으면 돼요”하며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는 ‘그래 이왕 이렇게 된 거 같이 가보는 거야. 하느님! 우리집에서 잘있다가 가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남들은 1명도 힘든 고3을 그것도 두 명씩이나… 그런데 말이 숟가락 하나 더 얹는 거지 정말 힘들었다.

빨래도 두 배 반찬도 두 배 시간도 두 배가 들었다. 아침이면 겨우 일어나는 아이들을 위해 밥상을 차려놓고 쫓기듯 직장으로 달려가곤 했다. 정말이지 하루만이라도 벗어나서 간절하게 쉬고 싶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지나서 고3도 막바지 레이스를 향할 무렵 본당에서 1박2일 봉사자를 위한 피정에 함께했다.

침묵 피정 중에 이웃사랑에 대하여 묵상했다. 이제껏 받기만 한 사랑을 더 많이 베풀어야겠다며 아빠 잃은 슬픔을 잊고자 다른 아이들보다 1년이나 더 복사를 서며 시나브로 신앙심을 키워온 베드로. 어느새 자라서 나보다 더 먼저 사랑을 실천했던 것이다. 더 많이 사랑하겠다는 다짐과 함께 정말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왔다.

십자가가 무겁다고 생각될 때면 피정 때의 기억을 되새겨 보며 잘 견디어 내었다. 시간이 흘러 수능을 끝낸 그 친구는 야간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다. 성탄절이 다가오던 어느 날 “어머니 이거 선물이에요. 목도리인데 출퇴근 때 하고 다니세요.” “잠도 못 자고 번 돈인데 용돈이나 하지….” 정말 가슴 찡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끝에 그 친구는 전액 장학금을 받는 군사학과로 베드로는 공대로 진학했다.

피정은 하느님과의 인연을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1차 피정을 다녀오고 또다시 가고 싶다는 막연한 소망이 가슴 한켠에 남아 있었는데… 아 드디어 부활선물을 받았다. 본당 신부님께서 2차 피정을 준비해 주셨다.

기도·묵상·나눔 내가 그 아이들에게 차려줬던 밥상의 몇 배나 되는 풍성한 밥상을 하느님께서 차려 주셨다. 그저 숟가락만 들기만 하면 됐다. 계룡산 자락에 하얀 물안개가 피어오르던 주일 아침 온갖 꽃들과 새들 나무들이 부활을 노래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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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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