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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화해 일치] 보낼 수 없는 편지와 송금 / 박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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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한에 정착한 대부분의 탈북자들은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에게 돈을 송금한다. 아직은 낯선 땅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지만 기아선상을 헤매는 고향 식구들에게 한 푼이라도 더 보내주려고 애쓴다.

나는 북한에 살면서 한 번도 부모님께 돈을 드려본 적이 없다. 남한처럼 ‘어버이날’이 없는 북한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선물을 드릴 기회는 생일날뿐이다. 기껏해야 부모님 술잔에 소주 한 잔 기울이면서 생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면 최상의 효도로 생각했다. 부모님께 돈을 드린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했다. 사는 게 너무 힘들다 보니 부모님께 손을 내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했다. 반면 김일성 생일만 되면 정권의 강제적인 지시에 따라 부모님께도 드리지 못했던 꽃을 사 들고 김일성 동상에 가야 한다.

‘어버이날’이 되면 부모님께 용돈도 드리고 카네이션 꽃다발을 드리는 남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가슴 한쪽이 바늘이 박힌 듯 아파져 온다. “아 나는 언제쯤 남한 사람들처럼 부모님께 사랑이 담긴 손 편지에 용돈을 담아 정성스레 드릴 수 있을까. 과연 언제 나는 카네이션 꽃바구니를 사 들고 부모님 계시는 곳으로 갈 수 있을까.”

이렇게 우리는 마음으로 드릴 수 없는 효도를 가슴에 묻고 산다. 다행히 중국을 거쳐 북한과 연계된 탈북자들을 통해 고향에 돈을 송금할 수 있다. 솔직히 우리는 특정한 기술이 없다 보니 적은 월급에 만족해야 하고 문화적 차이로 인한 스트레스도 극복해야 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 한푼 두푼 열심히 번 돈을 고향의 가족들에게 보내야 하는 탈북자들의 바람은 오직 하나다. 우리가 보낸 돈으로 열악한 경제난에 허덕이는 가족들이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아 다시 만날 통일의 그 날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올해로 고향을 떠난 지 3년이 된다. 작년 봄에 처음으로 북한에 남은 가족과 전화통화를 했다.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가족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오열했다. 하룻밤에 사라진 딸 소식으로 어머니는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셨다. 북한에서 사는 동안 부모님께 한 번도 효도해본 적이 없었는데 탈북으로 인해 또다시 부모님 가슴에 아물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그때 받았던 심리적 고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죽음을 각오하고 남한으로 올 때도 쓰러지지 않았던 나의 정신력은 부모님께 불효했다는 죄책감의 무게를 이길 수 없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정신을 가다듬고 일어섰다. ‘지금이라도 열심히 벌어 가족에게 돈을 보내주자. 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다.’ 이렇게 우리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송금한다. 돈을 보내줬다고 “자식의 도리를 다했다”고 말할 수 없지만 사랑한다고 꼭 안아 줄 부모님은 갈 수 없는 곳에 계신다. 나는 해마다 어버이날을 맞으며 부모님께 전할 수 없는 편지를 쓴다. 이 편지가 언제 사랑하는 가족에게 닿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희망은 절대 놓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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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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