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8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방주의 창] 내 안의 하느님 세상의 하느님 / 장해랑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대학시절 종교학 시간 과제는 종교를 믿는지 아닌지 그 이유를 쓰라는 것이었다. 당시 고학을 하고 있던 나는 종교 대신 나를 믿는다고 썼다. 그러면서 언젠가 인간인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신에게 손을 내밀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40대 어느 날 그날은 왔고 하느님을 영접했다. 힘들 때 불안할 때 십자가를 잡으면 위안과 안정을 얻는다. 서투른 기도로 하느님을 느끼고 세상 살아갈 힘을 얻는다.

세상살이가 팍팍한 요즘 생각한다. 나는 내 안의 하느님으로부터 위로받는데 이 땅의 가난한 이들은 해고당해 첨탑꼭대기에 오른 이들은 세월호 유족들은 간첩으로 몰린 이는 정보부로부터 해킹당한 국민은 누가 위로하나. 그들의 고통 분노를 보듬어줄 세상의 하느님은 어디 계실까. 왜 힘든 이들 앞에 나서지 않으실까. 그러다 김선우의 소설 「발원- 원효와 요석」을 읽었다. 정치도 종교도 신분귀천이 좌우하던 귀족사회였고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신라에서 원효는 천하고 힘없는 백성이 모두 부처가 되어 행복하게 함께 살아갈 불국토를 꿈꿨다. 불국토는 모두가 평등한 유토피아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다 밤중에 마셨던 세상에서 가장 달았던 물이 아침에 깨어보니 해골바가지 물이었고 거기서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일체유심조)’임을 깨닫고 발길을 돌린 원효였다. 그는 분황사를 중심으로 백성 하나하나가 모두 꽃이고 이들이 주인인 화엄불교운동을 벌인다. 기아에 허덕이던 하층민과 백제 고구려에서 흘러온 유민을 위한 공동체도 만든다. 삼국통일 전쟁이 시작되고 김춘추는 백성들에게 명망이 높았던 원효에게 승병을 이끌어주기를 요구한다. 원효는 적군까지 가리지 않고 모든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부대라면 맡겠다고 한다. 신성한 삼국통일 전쟁에 앞장서기는커녕 적군까지 치료하겠다니. 군중은 기대를 배신한 그에게 돌을 던진다.

눈길을 끈 것은 철학자 강신주의 해제였다. 평생 업이었던 원효와 요석을 소재로 한 소설 쓰기를 내려놓는다고 칭찬과 푸념을 던진 뒤 「송고승전」 「삼국유사」 등 원전을 이용하며 원효와 요석의 사랑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그에 따르면 소설의 육체적 사랑장면은 실체가 아니다. 원효와 김춘추의 둘째 딸 요석이 정신적 교감을 나눈 것은 사실이다. 요석은 아버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략결혼을 해야 했고 과부로 궁으로 다시 돌아온 뒤 임신을 하게 된다. 김춘추는 백성에게 인기 높던 정치적 걸림돌 원효도 제거하고 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요석을 원효에게 주기로 한다. 원효는 정치적 목적을 알면서도 스스로 궁으로 들어가 파계라는 오명을 쓴다. 요석과 뱃속의 아이(설총)를 구할만한 충분한 시간을 보낸 뒤 그는 평생 쌓은 명성을 버리고 저잣거리로 들어간다. 땀 냄새 술 냄새가 난무하는 더 낮고 역한 곳 내려갈 수 있는 가장 낮은 자리로 중생 모두가 꽃인 화엄의 세계로. 1500년 전 왕권정치 귀족불교가 중심이던 신라에서 원효가 꿈꾸었던 화엄불국토는 얼마나 가당찮은 것이었을까. 그럼에도 원효는 꿈꾸었고 몸으로 자비를 실천했다.

“집착의 대상을 모두 없애서 열반에 머물 수 있지만 커다란 자비의 마음으로 인해 열반마저도 없애 머물지 않는다.”(원효 「금강삼매경론」 강신주 글 재인용)

책은 종교가 종교 자체도 벗어나 무위의 존재가 되라 한다. “스스로를 일깨워 고통을 파하며 저잣거리도 들어가 손을 드리운 사람들…(중략)…이들이 이제 세상 속으로 간다. 우리들 속에서 나와 우리들 속으로 걸어가는 벗들이여. 아프고 아픈 지금 여기 고단한 우리에게 힘을 주시라. 목숨의 환한 빛을 나누어 주시라. 대자대비 사랑이여”(작가의 말 중) 소설은 종교가 저잣거리의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사랑을 베풀라고 말한다.

교황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가난한 이 고통받는 이들을 만나 이들의 아픔을 안아주었다. 이달 초 남미를 방문한 교황은 제국주의 시절 종교의 피해를 사과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기도를 이어갔다. 그렇다 내 안의 하느님은 세상의 하느님이어야 한다. 여기 정치 종교 경제 사회를 아우르는 교황의 말씀이 있다.

“물신숭배는 악마의 배설물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5-08-02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8

시편 85장 11절
자애와 진실이 서로 만나고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리라.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