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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물고기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 변승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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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임 신부가 두고 간 다섯 자짜리 어항에 아이들을 위해 예쁜 열대어를 키우기로 했다. 소위 ‘물생활’에 문외한이었던 나는 인터넷을 뒤져가며 공부를 하고 계획을 세웠다. 가장 중요하다는 여과기는 몇 가지 구입해보고는 성이 차지 않아 직접 제작했다. 이 어항에 소형 어종은 백 마리를 넣어도 비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낮에 더워도 열대어는 밤에 얼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시행착오를 거쳐 선택한 것이 말라위 시클리드라는 다 크면 10cm가량 되는 아프리카 원산의 열대어였다. 20마리를 키워보기로 했다. 처음 이틀은 건강하게 잘 노는 듯하더니 며칠 후부터 하루에 한 마리씩 죽기 시작했다.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수질도 수온도 문제가 없었고 별다른 외상도 없었다. 살아있는 놈들은 그렇게 활발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섯 마리만 남았다. 휑해진 어항을 다시 채우기 전에 원인을 알아내야 했다. 물고기들이 죽어간 과정을 되짚어 보았다. 죽어간 물고기들의 특징은 먹이를 먹지 않는다는 것. 먹이를 주면 다른 놈들은 바로 달려들어 게걸스럽게 먹어대는데 죽을 놈은 바닥에 가만히 배를 대고 움직이지 않는다. 심지어 다른 물고기들이 먹는 틈에 바로 위에다 먹이를 줘도 움직이질 않는 것이다. 그러다 굶어 죽는 것 같았다. 사람으로 보면 전형적인 우울증이다. 왕따를 당해 죽어간 것으로 결론 내렸다. 원래 이 어종이 초식성이면서도 영역에 대한 집착이 강해 사납다는 것과 그래서 다른 어종과 함께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몇 가지 처방이 있었다. 비좁게 키우라는 것 먹이를 적게 주라는 것 등. 다섯 놈이 점령해버린 큰 어항은 내버려두고 작은 어항 하나를 사서 새끼 40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가까이 놓고 관찰해보니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좁게 키우라는 것은 영역 다툼을 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고 먹이를 적게 자주 준다는 것은 식욕을 만족시켜주지 않음으로써 영역에 대한 욕구가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이었다.

교황청어린이전교회 캠프로 사나흘 집을 비우게 되었다. 함께 사는 신부에게 먹이를 하루 한 번 ‘조금만’ 주라고 이야기하고 다녀왔다. ‘조금만’이 아니라 양을 정확히 알려줬어야 했다. 와 보니 아이들은 일자 체형에서 참치 체형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룻밤을 자고 나니 한 마리가 죽어 있고 한 마리는 무리에서 떨어져 먹이를 먹지 않았다. 밥을 먹지 않는 놈을 격리시켜보려고 했지만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 미사를 집전하고 돌아와 보니 죽어 있었다.

인터넷에서 알려준 극약처방을 써보기로 했다. 어항 물을 한 뼘 정도만 남기고 빼버렸다. 물고기들은 가뭄 논바닥의 미꾸라지들처럼 어항 아래쪽에 바글거렸고 먹이도 하루 동안 주지 않았다. 이틀 후 물을 다시 채우고 보니 어느새 왕따는 사라져 있었다. 무리에서 떨어진 놈이 보이지 않았다. 그 후 왕따나 죽는 놈은 없었고 이젠 모두가 큰 어항에서 잘 지내고 있다.

신기한 체험이었다. 공간과 먹이가 넉넉하면 서로 싸우고 따돌리고 죽이는 물고기들…. 우리 세상도 마찬가지일까? 가난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서로 도울 줄 아는 사람들이 풍족해지면 서로를 가르고 남을 밟고 올라서려 하는 것 인간이라면 그런 모순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우리나라 빈부차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계층 간 세대 간 감정의 골은 깊어만 가고 각박해져만 간다. 학자들은 급속한 경제 성장을 사회 정신적 성숙이 따르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선진국들은 국민소득 1만 달러 즈음에 모두 치열한 다툼과 갈등과 고민과 투쟁을 통해 분배와 복지를 위한 구조와 정신적 성숙을 이뤘는데 우리나라는 성장에만 주력한 결과라는 것이다.

만나를 하루치만 거두라시던 하느님의 말씀과 생명의 빵에 대한 복음을 생각하며 어항 속 물고기들을 본다. 함께 어려운 시절을 겪은 물고기들은 넓은 어항에서도 잘 지내고 있다. 우리 사회를 위한 처방도 이렇게 간단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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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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