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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말씀의 홍수 속에서 / 인영균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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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라인망이 사람들을 다른 식으로는 결코 접하지 못했을 생각 개념 타인과 연결하는 것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다. 박식한 사람들이 글쓰기가 죽었다고 문화적 선언을 하던 바로 그 순간에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지금까지 인류가 썼던 것보다 더 많은 글을 온라인에서 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외톨이로 살아갈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선언한 바로 그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더 큰 무리를 지어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온라인에서 예기치 못한 수많은 방식으로 협력하고 협조하고 공유하며 창조했다. “케빈 켈리는 「기술의 충격」에서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현대 기술이 사람들을 새로운 관계 맺기의 지평으로 인도했다고 갈파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찾고자 하는 정보를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얻을 수 있고 카카오톡으로 대표되는 스마트폰용 메신저로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네트워크 상에서 우리는 하느님 말씀도 공유하고 있다. 스마트폰 메신저나 페이스북으로 강론이나 묵상글을 나눈다. 사제뿐 아니라 열심한 평신도도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글로 여러 매체에 올린다. 자신이 받은 좋은 말씀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또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전달한다. 말씀이 소리처럼 퍼져나간다. 하느님 말씀을 교류하고 공유하며 우리는 말씀 안에서 하나가 된다. 현대 기술이 복음선포를 위한 훌륭한 도구다.

좋은 도구임에도 그 이면에는 어두운 면이 존재한다. 온라인 상에는 너무나 많은 ‘말씀’들이 떠돌아다닌다. 어쩌면 우리는 ‘말씀의 홍수’ 속에 살고 있지는 않는가. 말씀의 소중함과 그 가치를 잃어버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말씀의 홍수 속에서 백화점 진열장 앞에서 쇼핑하듯이 말씀을 고른다. 고른 다음 싫으면 내다 버린다. 말씀도 물건처럼 소비되고 만다. 성당 자매들이 모이면 자신들이 받은 강론과 묵상글을 화제로 삼아 말들을 많이 한다고 한다. 비교 평가한다는 말이다. 이 강론은 이렇고 저 강론은 저렇고 하며 입에 올린다. 자신이 받은 말씀을 충분히 묵상하지 않고 그냥 수박겉핥기식으로 자신의 잣대로 재단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듣는 것은 각자 자기 나름대로 다르게 알아듣는다. 여기서 오해와 갈등이 일어난다. 이를 들은 사람은 자신이 잘 알지도 못하는 사제에 대해 좋지 못한 선입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올리는 사람도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경쟁 심리와 자기 과시의 유혹에 쉽게 빠진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영감에 따라 강론과 묵상을 글로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룩함으로 포장한 위선의 덫에 걸리고 만다. 필자 자신도 거의 매일 복음 묵상글을 나누고 있지만 이러한 유혹에 자유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페이스북 댓글에 은근히 눈이 가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릴 수 있다는 말이다. 사실 하느님의 영감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글은 세속 권력이다. 권력은 생명의 말씀이 아니라 살인 무기다. 말씀을 사회관계망에 올리고 나눌 때 산처럼 무거워야 함을 절감한다.

좋은 말씀을 접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사람도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좋은 글을 ‘퍼나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이웃에게 ‘선포한다’는 책임 의식과 선한 지향으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말씀은 전달되면서 가벼워지고 떠돌아다니는 소리로 전락하고 만다. 선포된 말씀만이 힘이 있고 사람들 안에서 더 풍성한 영적 열매를 맺는다.

말씀은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가 필요하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곧 겸허한 자세다. 참으로 하느님께 기도하는 사람만이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이다. 기도는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열린 사람은 말씀에 겸손한 사람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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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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