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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말도 안 되는… / 국춘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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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는 종종 상식적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세월호 사건이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같은 일들입니다.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인간 아기로 태어나 짐승의 밥통에 놓이는 것이야말로 말도 안 되는 일의 절정이지요. 그 엄청난 사건과는 비교할 수도 없지만 저희도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렀습니다. 건축비가 ‘전혀’ 없는 상태로 건축을 시작했거든요… 사실 저희는 염치없이 이 집에 외상으로 들어와 살고 있습니다….”

신축 본원 축복식에서 이런 말로 인사말을 시작했다. 사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무모하기 그지없는 결단으로 본원신축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동안 재정적 결핍 못지않게 이웃들의 얼굴과 이름으로 나타난 하느님의 자비를 만났다. 여러 형태의 봉사로 도움을 주는 관대한 마음들과 건축 관련자들과의 만남은 아마도 그간 우리가 얻은 가장 소중한 자산이리라. 바로 그 만남들이 하느님의 자비이고 기적이다.

자비의 희년이 시작된 지난 12월 8일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폐막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교종은 성문을 열면서 공의회가 열었던 교회의 문을 상기시켰다. “공의회를 기념하는 것은… 남겨진 문헌만을 기억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에 앞서 공의회는 만남입니다. 교회와 우리 시대 사람들의 고유한 만남입니다. 교회가 오랜 시간 스스로를 감추고 있던 장막에서 나와 열정으로 선교의 여정을 시작하도록 하신 성령께서 주관하신 만남입니다.”(특별희년 개막미사 강론)

이 말을 달리 풀면 자비는 바로 만남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3년 강론과 인터뷰에서 그는 “진리는 만남”이라고 곧 “진리는 관계”라고 역설했다. 하느님의 가장 깊은 진리가 교종의 말대로 “복음의 핵심이 자비”라면 자비는 바로 만남인 것이다. 교회가 문을 열고 세상을 만나러 가는 것이 실은 자비의 표현이다. 그래서 공의회 폐막 50주년을 기리는 이날 자비의 희년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즉위 직후부터 교회더러 교회의 모든 구성원더러 밖으로 나가라고 제발 자기 밖으로 나가 변두리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라고 성가실 정도로 재촉하는 교종은 바로 그 만남에서 하느님의 자비가 세상으로 스며들기를 바라는 것이다.

사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어 오시는 것은 사람을 나를 만나고자 함이 아닌가? 만물의 창조주가 바로 나를 만나고자 당신이 만든 피조물 중 가장 약한 존재가 되어 오는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은 바로 하느님 자비의 현현이다. 성 베르나르도는 말한다. “보십시오 아버지께서는 마치 당신의 자비로 가득 채운 한 자루를 이 땅에 내려보내신 것과 같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육신을 취하시는 것 그 이상으로 그분이 지니신 자비에 대한 더 훌륭한 증거가 있겠습니까?”(Sermo di Epiphania Domini 1-2) 하느님이 그 이상으로 인간을 만나실 수가 있을까?

많은 기회를 놓치면서 국민을 실망시키고 바삭거리던 제1야당이 이 혼란한 상황에 또 요란스레 쪼개지는 소리를 들으며 총선까지의 시간이 아득해진다. 말의 부드러움이 정신의 유약함이 아니고 태도의 온건함이 정책의 부재가 아님을 보여 주지 못하는 사람 소통의 미학이라는 정치에서 말이나 신념만의 대화를 넘어 관계의 대화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은 사람 그들 주변의 이합집산을 지켜보면서 고통과 절망의 번져가는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할 자비는 만남은 어떤 것일까? 견고하고 지속적이고 확실한 가치들이 사라져가는 이 액체시대에 신앙인들은 프란치스코 교종이 강조하는 “만남의 문화”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이 자비의 희년에 이 나라를 위한 큰 자비를 청하며 주변의 일상적 만남부터 소중히 가꾸기를. 육화에서 드러나는 그 터무니없는 자비 앞에서 이 땅의 말도 안 되는 정치현실과 모든 일이 말이 되도록 함께 힘쓰기를.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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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5-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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