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4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민족 화해 일치] 김정은을 위한 기도 / 오규열 교수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중국은 1978년 12월 ‘중국공산당 제11기 3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개혁개방을 결의한 후 집단으로 농사짓고 일률적으로 나누어 주던 인민공사를 해체했다. 그리고 한 가정이 책임지고 농사를 짓도록 농민들에게 땅을 나누어 주었다. 개혁의 시작이었다. 이듬해 농민들은 충분히 먹고도 남을 농산물을 생산하자 서로 교환할 수 있도록 했다. 시장의 도입이었다. 중국인들은 1978년 중국공산당의 결정을 주도한 등소평을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부른다.

그런데 이후 변화하는 중국의 모습을 살펴보면 등소평이 처음부터 매우 정교하게 개혁개방정책을 설계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는 중국인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 식량생산 증대를 고심했고 이를 정책결정의 최우선 순위에 두었다. 그랬기 때문에 사회주의 이념의 상징인 인민공사를 해체하고 농가생산을 도입한 것이다. 농가생산이 시행되자 이듬해 농산물이 넘쳐나는 새로운 문제에 봉착했다. 이때에도 그는 중국인들의 생활을 좀 더 윤택하게 만드는데 정책결정의 방점을 두고 사회주의에도 상품이 있다는 논리로 물건들을 서로 교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것이 중국을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이끌어간 출발점이었다.

식량문제를 해결한 중국은 주민들의 좀 더 나은 삶을 위해 1982년 공업생산량을 증대시키고자 했다. 그런데 공업생산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공장을 짓고 가동할 돈이 필요했다. 그러자 등소평은 과거 모택동 시대의 호전적인 모습을 버리고 미국과 해외 화교 그리고 대만에 손을 내밀었다. 반신반의하던 국제사회는 변화된 중국의 태도를 확인하고 호응했으며 중국의 연해개방도시들은 세계의 공장으로 변모했다. 1978년 개혁개방으로 시작된 개혁이 중국을 세계 제2위의 경제대국으로 성장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은 중국인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겠다는 중국 지도부의 의지가 모든 정책결정에서 우선됐기 때문이라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북한은 공식적으로 조선노동당에서 개혁개방을 결의하지 않았지만 식량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집단으로 농사짓고 일률적으로 나누어주던 협동농장을 3~4가구가 책임지는 분조제로 변화시켰다. 그러자 북한 역시 농산물 생산량이 늘었고 배급제가 붕괴됐기 때문에 부득이 장마당에서 유통시키는 것을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현재 북한의 상황이다. 중국과 비교하면 1980년대 초 공업개혁을 시작한 시점과 유사하다. 그러나 북한의 개혁속도와 범위는 중국보다 제한적이며 동기가 수동적이다. 김정은은 10월 10일 개최된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행사에서 “인민생활을 돌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이 핵개발보다는 북한주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기를 기도드린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6-01-01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4

루카 1장 38절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