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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귀여운 아기들 어서 모여라 / 변승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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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죄한 아기 순교자들의 축일 제의방에서 기다리던 내 귀에 입당성가가 들려왔다. “귀여운 아기들 어서 모여라. 베들레헴 성 밖 외양간으로…” 순간 깜짝 놀라 속으로 외쳤다. ‘아니야 아기들아! 오면 안 돼! 오면 다 죽어!’ 이 축복받은 때 축복받은 장소에 아기들은 특히 두 살 이하의 사내아이라면 결코 있어서는 안 되었다. 권력에 대한 욕심에 눈이 먼 헤로데의 학살이 있었으니….

왜 무죄하고 순수한 아기들이 희생되어야 했을까? 흠 없는 어린 양으로서 목숨을 바쳐 이 세상의 죄를 없애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시는 구세주 앞에 이 세상의 죄와 불순함을 드러내기 위해서가 아닐까? 무죄하고 순수한 이 그러면서도 자신을 방어할 어떤 수단도 지니지 못한 가장 약한 존재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희생시킨 어른들의 탐욕과 비겁함을 말이다. 이천년 전이라고는 하지만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어떻게 이런 행위가 벌어지고 또 용납될 수 있었을까?

헤로데가 미쳤던 것은 아니다. 정통성이 부족한 로마 식민지의 왕으로서 유다인들의 지지를 간절히 필요로 했던 그가 이런 선택을 했다는 것은 자신의 지지자들과 반대자들 그리고 백성들의 속성을 잘 알았고 그들의 두려움과 욕심이 그를 보호하고 감싸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이런 무도한 일을 벌일 수 있는 폭군 앞에서는 조심해야겠다고. 미디어가 발달하지 못했던 당시였다고는 하지만 수도 예루살렘 코앞에 있는 베들레헴에서 일어난 이러한 학살을 덮을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사람들의 탐욕과 비겁함이었던 것이다.

이럴 수는 없다고 울분을 터뜨린 사람이 없었을까? 진상을 밝히자고 나선 사람이 없었을까? 학살을 시행한 병사들 중에는 양심선언을 한 이가 없었을까? 부모 중에는 목숨을 걸고 단식 투쟁이라도 하며 나선 사람이 없었을까?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사건을 덮으려고 했을 것이다. 헤로데 밑에서 권력을 누리던 신하들 자신의 행위가 사회질서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합리화했을 병사들 무엇보다도 처음에는 분노했지만 금방 일상으로 돌아가 항변하는 부모들을 자식의 목숨값이나 바라는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평범한 이웃들이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런 세상에 오셨다. 아기들처럼 순수하고 무력한 모습으로. 그분은 하늘나라에는 힘있는 어른들이 아니라 그들에게 무시당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사람이 들어간다고 하셨고 아흔아홉의 의인보다 회개하는 죄인 하나가 하늘나라를 더 기쁘게 한다고 하셨다.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에게 베푸는 것이 곧 당신에게 하는 것이며 그렇게 행하는 사람만이 하늘나라에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다. 그분이 보여주신 구원은 그런 것이었다. 가장 약한 이를 보호하고 돌보는 세상 그것이 하늘나라의 모습이다.

연말연시에 우리는 늘 다사다난한 지난해를 돌아보며 평화로운 새해를 주시기를 간구한다. 지난해에도 세계는 가난과 갈등으로 신음했고 우리나라는 세월호 사건에 대한 조사 메르스 노동시장 개편과 교과서 국정화라는 이슈들 속에서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시대를 역행하는 권력자의 소통 부재를 탓하고 국민을 보호하고 보살피는 국가의 역할이 마비되었다고 한탄하며 서로 남의 탓을 주고받는 가운데 언제나처럼 사회의 가장 약한 이들이 희생되고 있다.

새해에 어떤 평화를 구해야 할까? 적어도 나에게만은 큰 어려움이 닥치지 않는 순탄한 한해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면 그것은 세상이 주는 비굴하고 거짓된 평화일 뿐이다. 그리스도의 평화를 바란다면 이웃의 어려움을 함께 짊어지는 이가 되도록 이끌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늘나라는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새해에는 더 많은 젊은 부부들이 기꺼이 아이 갖기를 원하는 따뜻하고 희망찬 세상을 함께 만들어갔으면 한다. “귀여운 아기들아 어서 이 세상에 오너라! 우리가 너희를 가장 귀하게 지켜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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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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