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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화해 일치] 만복 할머니와 프란체스카 / 오규열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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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통에 많은 신자들이 월남했고 대부분 이산가족이 됐다. 북한의 가족을 한 번이라도 만나보겠다고 상봉 신청을 한 인원은 약 13만 명이다. 이 가운데 절반가량이 이미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생존해 계신 분들의 50 이상이 80세 이상의 고령이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는 북한에 고향을 둔 교우들의 적극적인 후원 속에 북한 복음화와 평화통일의 초석을 놓아가고 있다. 민족화해위원회 활동을 하면서 뵙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나오고 큰 힘이 되는 분이 계신데 서울 후암동본당의 김만복 할머니이시다. 만복 할머니는 월남해 해방촌에 정착하셨고 타고난 근면함으로 일가를 이루셨다. 이산가족인 만복 할머니는 여든이 넘으셨지만 북한교회의 복원을 위해 항상 기도하시고 매주 화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 참례는 물론 민화위 활동에 적극 참여하신다. 항상 씩씩하고 건강한 만복 할머니께서 얼마 전 휴전선의 5사단 승리전망대를 다녀오는 행사에 늦으셨다. 부지런하기로 소문난 만복 할머니에게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는 어인 일로 늦으셨는지 여쭤 보았다. 그러자 만복 할머니께서는 아무래도 당신 생전에 ‘고향 땅을 밟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하시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때 민화위의 젊은 피 프란체스카가 “걱정하시지 말라” “곧 고향에 가실 수 있다”고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프란체스카는 함경북도 회령에서 중국을 거쳐 200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이다. 프란체스카는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지만 북한이탈주민들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해결사로 더 바쁘게 지낸다. 하나원을 나와 한국사회에 적응해 가는 새터민에게 선배의 경험을 전수해 주는 것은 물론 돌발적인 일이 발생하면 긴급지원을 자처한다. 최근 조금 줄어들었지만 북한을 떠나 남한에 정착한 북한이탈주민이 3만 명에 육박한다. 만복 할머니가 1세대 이산가족이라면 프란체스카는 새로운 2세대 이산가족이다. 만복 할머니는 이산가족 상봉신청이라도 할 수 있지만 프란체스카는 이마저도 불가능하다. 만복 할머니는 다 같이 어려운 시절 상당수의 실향민들과 함께 풍파를 헤쳐 나갈 수 있었지만 프란체스카는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 받으며 새로운 세상에 적응했다.

프란체스카의 위로를 받은 만복 할머니는 표정이 밝아지며 생기를 찾으셨다. 만복 할머니와 프란체스카는 명동에서 출발해 승리전망대를 내려와 김화본당 마현공소에서 미사를 드리는 내내 함께했다. 그런데 미사 후 도착한 화천 산소길에서 둘은 함께하지 못했다. 그 건강하신 만복 할머니께서 힘에 부쳐 산소길을 포기하셨기 때문이다. 프란체스카는 만복 할머니를 나에게 부탁하고 산소길 산책에 나섰다. 만복 할머니께서 “걷기도 힘든데 북에 두고 온 동생들을 볼 수 있을까요” 물으시는데 굵은 눈물을 흘리며 앞서가는 프란체스카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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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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