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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엠마누엘과 ‘롱디’ 정부 / 국춘심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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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꼭 그 방법이어야 했을까?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당신의 전능과 영광으로 얼마든지 쉽고 편하게 모든 인간을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이 왜 굳이 그토록 약한 아기로 그렇게 가난하게 오셔서 그 험난한 인생살이를 선택하셨을까? 오래된 질문 이미 답을 알고 있는 해묵은 질문이 이번 성탄에 나를 붙들었다. 평화 자체로 누워 있는 아기 예수를 바라보면서 새삼 스쳐가는 생각은 갓난아기들을 볼 때 종종 스쳐가는 생각과 비슷했다. “저 아기가 커서 살아갈 세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 육화사건은 곧 십자가를 향한 것이요 구유는 수난과 죽음을 향한 출발점이 아닌가.

암튼 하느님은 그 전능을 행사하기보다는 우리와 똑같은 존재가 되기를 선택했다. 영광스러운 자리에서 인간들을 조종하는 편안한 지름길보다는 지상의 인생살이라는 그 험난한 길을 선택했다. 사랑은 상대를 자기에게 끌어오기보다 스스로 상대와 ‘같아지고자’하기 때문이다. 그분은 사랑하시는 상대와 ‘함께 계시는’ 엠마누엘이시기 때문이다. 곧 구원 프로젝트 이전에 ‘사랑’인 것이다. 그분에게는 손쉬운 구원 ‘정책’ 이전에 인간들 사이의 밀착된 ‘현존’으로 그 사랑을 믿게 하시고 그 ‘사랑을 통해’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살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천막을 치셨다.”(요한 1 14)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장거리 연애라는 ‘롱디 커플’(long distance couple) 롱디 가족이 늘어난다고 한다. “나는 접속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새로운 개체선언이 나올 만큼 온라인으로 동시에 지구상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현존할 수 있는가 하면 옆 사람이 내 가족이 자살하려는 순간에도 알아채지 못하는 멀고 먼 관계 부재(不在)의 시대가 우리 시대이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일 외교 장관의 합의가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준 이유는 어느 일간지 기자가 거의 을미사변 수준이라고 탄식했다는 역사 문제를 다루는 외교합의 문서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는 피해국 정부의 일방적 무장해제라는 어이없는 내용을 들여다보기 전에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자화자찬 선언 때문일 것이다. 역사문제에 과연 “최종적·불가역적 해결”이 있을 수 있을까? 그들이 당장이라도 끝내 버리고 싶어 하는 일들 그럼에도 결코 끝나지 않은 일들은 부당해고 노동자들과 세월호 이야기 밀양과 강정마을의 이야기처럼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람들의 제대로 평가되지 않은 이야기들이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이 합의와 선언의 주체들은 과연 이 문제의 실질적 주역인 피해당사자 할머니들과 함께한 순간이 있었을까? 그분들의 통한의 삶 곁에 얼마나 현존했을까? 오래된 골칫거리의 해결 이전에 역사의 희생자인 자국민에 대한 사랑으로 험난한 고생길을 각오하고 그들 가운데 현존하는 엠마누엘 정부인가? 굴욕적 담합이라는 손쉬운 외교 프로젝트 이전에 정부가 국민의 삶 안에 얼마나 현존하고 국민과 함께하는가? 역사를 거래의 대상으로 삼은 이번 합의에서도 정부는 국민을 목적이 아니라 정권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다. 소녀상의 발뒤꿈치가 들려 있는 것은 조국 땅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살아온 그분들의 삶을 상징한다는 조각가의 말이다. 언제나 우리는 그 발꿈치가 땅을 딛게 할 수 있을까!

연설에서만 “존경하는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이 아니라 실제 존경과 사랑으로 국민의 삶에 현존하는 정부가 그립다. 한편으로는 ‘롱디 정부’ 대신 엠마누엘 정부를 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정책과 정치사회적 프로젝트로서가 아니라 얼굴을 맞대고 눈길과 손길과 마음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현존’하는 진정한 인간관계를 우리 스스로 가꾸어야 하겠다. 우리 스스로 마음 시린 이웃들에게 현존하는 엠마누엘 국민이 되어야겠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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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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