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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소비사회’ 속의 교회 / 허석훈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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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본당사목을 하시는 선배 신부님과 명동의 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던 중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신부님 본당의 연세 지긋하신 자매님이 농담 같은 진담으로 “내가 죽게 되면 화장(火葬)해서 내 유골을 백화점 옥상에 뿌려주면 좋겠어!”라고 말씀하시더랍니다. 그리고 덧붙여 하신 말씀은 살면서 보낸 시간들 중에 백화점에서 보낸 시간이 제일 재미있더라는 겁니다. 백화점에서 쇼핑도 하고 밥도 먹고 친구를 만나 차도 마시고 백화점은 거의 모든 일이 가능한 곳이라는 거지요. 그 농담 같은 유언에 모였던 사제들이 크게 웃었지만 ‘백화점에 담긴 행복 철학’을 우스갯소리 삼아 그저 웃어버리고 말기에는 왠지 서글픈 우리네 자화상이 마음에 그려졌었습니다.

재미와 행복이 우리네 삶에 뒤엉켜 어느 누구도 그 경계를 명확히 구분하기 힘들어진 세상입니다. 물론 재미가 행복의 요건이 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하지만 ‘놀이를 통해 얻는 쾌락적 재미’로부터 그 자체가 목적인 ‘덕스러운 행복’을 구분하고 관조(觀照)하는 삶 안에서 자족(自足)함이 행복임을 가르쳤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혜가 지금 우리의 현실과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소비가 기실(其實) 재미난 일이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으면서 홀로 즐길 수 있는 놀이여서 그나마 답답하고 스트레스 많은 우리나라 사람들 일상에 행복한 일탈(逸脫)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소비가 그렇게 재미있는 놀이인 만큼 재화(財貨) 또한 큰 가치를 발휘하는 사회입니다. 요즈음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러한 현상을 이미 1970년에 프랑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가 학문적으로 정리해 놓았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만 합니다. 그가 저서 「소비의 사회」에서 말하고 있듯이 현대사회에서 소비되는 것은 생산물이 아니라 기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필요한 것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과 나를 다르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상징물들을 구매합니다. 우리가 유행을 따라야 하고 ‘유명 브랜드’나 ‘명품’이 터무니없이 비싸도 사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기호소비’를 통해 만족하고 남과 나를 차별화시킬 수 있는 도구를 구비합니다.

‘소비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상품의 사용가치’나 ‘교환가치’가 아닙니다. ‘소비사회’가 우리에게 중요하다 가르치고 요구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기호가치’입니다. 그 기호는 삶의 수준이 되고 행복의 척도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이 이미 지닌 기호를 자기 몸에 치장하지 못하면 왕따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들이 소비한 유행을 소비할 수 없으면 스스로 불행하다 여기기도 합니다.

반대로 그 ‘기호가치’를 통하여 우리는 남들로부터 부러움을 살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내 자신이 소비를 통해 행복해졌다고 생각할 수 있는 ‘착각의 기호’를 마음에 인식하고 타인에게는 ‘부러워하라!’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쳇말로 ‘갑질’같은 차가운 어리석음이 비롯되는 착각의 장소도 ‘기호소비’의 허상이 만들어 준 ‘자화상’이겠지요.

우리나라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질적 풍요보다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나눈 정(情)과 따뜻함의 가치가 더 컸던 사회였습니다. 그 사회 안에서 ‘희생’이 어리석지 않았고 ‘인정’이 바보스럽지 않았습니다. ‘진리’를 위한 투신이 위대했고 아름다웠던 시대를 우리는 가까운 과거로 여전히 기억하고 있는데 우리에게 그 기억은 이제 아련한 시간에 대한 향수(鄕愁)로만 그려집니다.

‘헌신의 시대’에 우리가 지녔던 종교심은 더 이상 우리에게 남아 있지 않은 듯합니다. ‘진정한 행복’을 관조하지 못한 채 재미만 남은 사회의 종교심이 ‘소비’로 쏠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이러한 ‘소비사회’의 구성원들이 세우는 성전이 ‘백화점’이라는 것도 당연한 이치입니다. 다시 한 번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세상의 ‘진정한 가치’를 되새기며 올 한 해를 열었으면 좋겠습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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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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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얼굴을 당신 종 위에 비추시고 당신 자애로 저를 구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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