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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이제 아이들을 보호하고 신앙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 김혜경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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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올해 88회 아카데미 시상식(2월 28일)에서 최고 영예인 작품상 외 감독상 각본상 등 주요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된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감독 마이클 슈거가 시상식에서 한 말이다. 그는 영화의 메시지가 “바티칸까지 울려 퍼지길 바란다”고도 했다. 도대체 무슨 영화기에 그럴까? 영화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시에 있는 ‘보스턴 글로브’라는 신문사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들로 구성된 ‘스포트라이트’ 팀이 밝혀낸 2002년 ‘가톨릭 사제들에 의한 아동 성추행’ 사건의 취재과정을 담고 있는 내용이다. 영화는 2001년 여름 글로브지의 새 편집장으로 마티 바론이 부임해 오면서부터 시작된다. 그는 “언론은 독자들에게 즉각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진 사람이었고 언론인으로서 독립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권력과도 인맥을 형성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이런 소신은 보스턴 글로브지의 스포트라이트 팀의 성격과도 맞닿아 있었다. 스포트라이트 팀은 편집장 직속의 독립부서로 1명의 팀장과 3명의 팀원으로 구성되어 주제 선정에서부터 취재방향까지 모든 기획을 팀원들끼리 합의하여 결정하는 의사구조를 가지고 있어 외부간섭을 받지 않았다. 그 덕분에 글로브지는 1872년에 창간된 이래 140년간 미국의 3대 일간지로 성장하며 미국 내 최고 언론상인 퓰리처상을 18회 이상이나 받을 정도로 기획취재와 전문보도에 강점이 있는 언론사가 되었다.

영화는 우리에게 두 가지를 시사한다. 언론과 종교의 역할이다. 마티 바론과 스포트라이트 팀은 백인 가톨릭 신자들이 많은 보스턴 지역에서 신문의 최대 독자들이 가톨릭 신자들인 상황에서 ‘관행과 정책’ 속에 은폐된 진실을 파헤쳐 나간다. 교회기관은 물론 변호사 심리전담 의사 경쟁 언론사 보스턴 시의 신자들과 피해자 친구들까지 총체적이고 조직적인 외면과 냉대 속에서 피해자는 물론 피의자까지 늘어난 데 대한 모두의 사회적 책임을 묻는다. 보스턴 글로버지 자체도 과거 재보를 대수롭지 않게 다루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진실 은폐’에 일조해 오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문제는 가톨릭 사제 개인의 추문이 아니라 교회의 시스템으로 옮겨갔고 교구조차 어떻게 할 수 없는 집단 병리학적인 현상으로 정의 내릴 지경이 되었고 바티칸도 알아야 하는 문제가 되었다. 이에 언론으로서 독자들에게는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도록 막아야 했고 교회에는 진정성 있는 조언을 통해 신앙의 본질을 회복해야 한다고 외쳤다. 언론이 해야 하는 일과 실제 하고 있는 일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옳은 일’이 어떤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기레기’들에게 “대중매체의 사명은 진리에 대한 봉사”(알베리오네)임을 깨닫게 해 주는 영화하고 하겠다.

다른 하나는 교회의 역할 더 정확하게는 교계제도의 기능이다. 교계제도는 교회의 수장인 교황을 중심으로 신품권을 갖는 성직자들이 기도와 미사 성사 집행을 통해 교회를 거룩하게 하고 ‘백성들이 빗나가거나 쇠약해지지 않도록’ 영적으로 보호하고 지도하라고 만든 제도적인 질서다. 그런데 교계 속에 있는 사제들이 과연 ‘백성들이 빗나가거나 쇠약해지지 않도록’ 돌보고 있는지 혹여 그들이 앞장서서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영화는 콕 집어서 심판대에 세운다. 교계제도는 ‘백성들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지 잘못하는 사제들을 덮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아니다. 교회를 향한 따가운 시선이 무서우면 그만큼 투명해지면 된다.

이 영화에 대한 바티칸의 반응은 신자인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이 영화는) 반(反)가톨릭이 아니라 가톨릭 사제의 아동 성추행 피해자들의 깊은 고통을 들려주는 동시에 여전히 교회에 대한 믿음 교회의 정화에 힘써온 교황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했다. 바티칸의 반응은 무능한 권력자들의 보이지 않는 폭력에 조직이 정당성을 부여해 주지 않겠다는 의미로 들렸다. 백성의 희망은 교회가 외부의 비판에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상처를 인식하는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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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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