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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나의 스승 예수를 소개합니다 / 권순남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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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 재교육이나 강의 기회가 많았던 나는 주로 ‘교회가 무엇인가’ ‘복음화가 무엇인가?’ ‘우리의 정체성, 즉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하는 사람들인가?’라는 근본 주제를 선택했었다. 그런 내용의 강의를 자주하다 보니, 내게도 크고도 새롭게 다가왔던 사실은 예수께서 한 곳에 머무르시지 않고 늘 찾아 돌아 다니셨다는 점이었다. 예수의 생애는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 위한’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는 사실로 가득 차 있었다. 그야말로 길 위의 사람이었다. 그를 따르겠노라 찾아 온 사람들에게 여우도, 새들도 집이 있지만 자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으니 그래도 따르겠는지를 되물으신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의 예수 제자들의 공동체를 들여다보면 그분처럼 찾아 나서는 일이 드물어졌다. 세상도 많이 변했지만 편리와 필요성 때문에 거대하고 화려한 공간을 많이 지어, 구원을 원한다면 또는 예수라는 분을 만나길 원한다면 그 장소에 언제, 몇 시에 오라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었다. 가톨릭교회의 본당 사목 형태 대부분은 인간 삶의 현장인 가정이나 지역, 직장, 사회로 찾아가는 형태라기보다는 높고 튼튼한 울타리 안의 거대한 집으로 모이게 하고 닫힌 그곳에서 예수의 가르침을 외친다. 24시간 틈새 없이 가동되는 현대 사회의 복잡다단한 산업 구조라는 새로운 현상을 마주하고 있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정해져 오고 있었던 본당 시간표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 방법으로 복음이 선포되고 있다. 예비신자 교리반 시간표도 본당 사목자의 사정과 계획에 맞춰 기간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곳이 대부분이다. 그것도 그들의 편리에 따라 어느 시기와 시간에만 오라한다. 그래서 실제로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도 사정이 안 되는 사람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우리 스승 예수는 그러시지 않았는데’라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예수는 ‘세상’에 강생하셨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에게 “세상의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명령하셨다. 그분은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셨고 마을과 집들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자연스레 필요한 일들을 해결해 주셨다. 당시 자기 지역 공동체에서 살아갈 수 없었던 나병환자를 외딴 곳에서 만났던 이유도, 구걸하던 소경의 외침을 들으셨던 이유도, 나무 위 자캐오를 보실 수 있던 것도,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가 가능했던 것도 그렇게 길을 나서서 다니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본당이라는 공간에서 그 시간에 나올 수 있는 형편이 되어 모인 사람들끼리 모여 뭔가를 하고 있는데, 그 일이 자칫 우리들만을 위한 잔치와 행사가 될까 마음이 편치 않다. 그분은 우리를 ‘세상 끝까지’ 가라고 하셨고 ‘세상 속으로’ 파견하셨는데 지금 우리들은 어디를 찾아다니며 예수를 전하고 길 위의 예수를 만날까?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자기 안위에 매달렸기 때문에, 그리고 자기 안에 갇혀 있기 때문에 건전하지 못한 교회가 되는 것보다는, 거리로 나섰기 때문에 다치고, 상처입고, 더러워진 그런 교회를 더 좋아합니다.”(복음의 기쁨 49항 참조)라고 설파하셨다.

어느 날 예수는 어떤 고을에 들르셔서 더러운 영을 쫓아내 주시고 많은 병자를 고치시고 떠나시려 하자 고을 사람들이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주십사고 붙들었다. 그러자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하시며 다시 길을 나서셨다.(루카 4,42 참조) 이 시대에도 스승의 모범을 따르면서 길 떠나는 제자들이 더 많았으면 한다. 두려움이나 망설임 없이 길을 나서서 사람들이 울고 있는 장소, 고통에 몸부림치는 장소, 소외당해 아무도 봐 주지 않는 구석진 곳으로 찾아 나서야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지는 못할망정 찾아 나선 길 위의 사목 일꾼을 욕하고 비난하는 그런 일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예수의 제자라면 말이다.

권순남 수녀(샬트르성바오로수녀회 대구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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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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