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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예수님의 평화와 알레포의 비극” / 고병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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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전, 내전 중인 시리아의 알레포로부터 갑작스런 공습으로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조된 5살 소년 옴란 다크니시의 영상이 전해졌다. 지금 자기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모르는 듯한 멍한 표정으로 이마에 흐르는 피를 그냥 손으로 훔쳐내는 것이다. 너무도 이른 나이에 씌워진 삶의 십자가가 무겁게 느껴져 무척 슬펐다. 더구나 폭격 당시 집 밖에서 놀다 복부를 크게 다친 소년의 10살 형의 사망소식을 들으면서 죽고 죽이는 전쟁의 참혹함에 극심한 공포와 전율마저 몰려왔다. 불과 8월 한 달 사이에만 어린이 백 명을 포함해 사백사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고 하니, 도대체 그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지금껏 알려진 바는 같은 동족끼리 강대국의 후원 하에 정부군, IS, 반군으로 갈려 5년째 치열한 싸움 중이란다. 대명천지(大明天地)에 어마어마한 대량살상무기들을 도심 주택가는 물론 병원, 학교에 이르기까지 예사로 쏟아붓는다고 한다. 생존에 필요한 모든 물자나 인적통행, 심지어 국제사회의 구호품마저 차단한 채 어두운 구렁의 맨 밑바닥에 떨어져(이사14,15) 한 치 앞도 볼 수 없다고 한다. 그 사이에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중의 하나인 천년의 도시 ‘알레포’가 흉측하게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어느 일곱 살 소년이 그린 ‘죽은 아이는 미소 짓고 산 아이는 울고 있는’ 그림 속에 묻어나듯 죽는 것을 사는 것보다 행복하게 여기는 절망과 죽음의 땅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용기 있게 나선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이웃의 슬픔과 고통을 자신의 슬픔과 고통(사목헌장 1항)으로 여겨 자발적으로 모여 만든 일반 시민구조대이다. 그들은 절망과 증오의 돌을 치우고(요한 11,39) 자신을 바친 희망의 전령(傳令)들인 것이다. 보통 ‘하얀 헬멧 구조대’라 일컫는데 헬멧과 삽, 약간의 의료기구만을 갖추고,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전장(戰場) 곳곳을 뛰어다닌다. 찢기고 다쳐 초주검이 된 이웃을 발견하면, 정부군과 반군 심지어 종교적 차이마저 가리지 않고 자비의 손길을 건네준 착한 사마리아인(루카10,29-38참조)인 것이다. 지금껏 6만 명 이상 구조한 것은 물론, 이 추악하고 지긋지긋한 전쟁을 끝내기 위해 우리가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잔잔히 일깨워주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은 하느님의 창조질서(창세 1장 참조)를 무참히 파괴하고, 오랜 세월 인류가 공들여 쌓아온 문명의 토대를 여지없이 허물어버렸다. 현재 중동을 비롯 세계 각처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교종 프란치스코의 지적처럼 ‘이권, 돈, 천연자원, 그리고 다른 민족의 지배’를 위한 탐욕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민족, 인종, 종교 간 증오와 적대감을 부추겨 극심한 분열과 갈등을 야기하고,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화를 함부로 훼손해 버린다. 그것은 하느님을 거스르고 인간 자신을 거스르는 범죄(사목헌장 80항)이자, 인류의 현재와 미래를 위협하는 모험(간추린 사회교리 497항)으로 단죄받아 마땅하다. 따라서 우리는 순교자적 결기로 전쟁을 일삼거나 이에 협력하는 온갖 악의 세력에 단호히 깨어있자. ‘무력은 더 큰 무력을 낳는다’는 사실을 알고 평화의 소중함을 배워 익히자. 숱한 폭력과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신음하는 이웃에게 인도주의적 관심과 자비를 아끼지 말자.

특별히 우리 한국교회는 각 교구별로 지난 8월 13일~22일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주최로 열린 ‘2016 평화의 바람’처럼 주님의 평화를 추구하는 여정들을 지속해 나가자. 이럴 때 세상에 드리워진 어둠의 장막을 조금씩 벗겨내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참된 평화(요한 14,27 참조)를 노래할 수 있으리라.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고병수 신부 (제주교구 복음화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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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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