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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북한인권법, ‘진실을 향한 자유’ / 박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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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 쓴 일기. 개학을 앞둔 학생들의 큰 고민이다. 일기가 차일피일 미뤄진 이유는 간단하다. 일상의 기록이 ‘수행해야 할 과제’이고 ‘검사받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일기에 등장하는 사건과 사람들이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치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밀린 일기를 정신없이 쓰다 보면, 일면에 담긴 진실과 맥락을 숨긴 채 사건들의 단순 나열이나 자기방어의 기제로 변용될 가능성이 크다.

작가가 꿈이었던 안네. 나치의 유대인 박해로 2년간 집에서 숨어 지낼 수밖에 없는 ‘자의적 구금 상태’에 처한다. 하지만 안네는 사춘기 소녀의 다양한 감정들을 담담한 일상의 기록으로 표현해 냈다. 그렇게 「안네의 일기」가 탄생했다. 안네는 소녀 특유의 감수성으로 솔직함과 위트를 잃지 않은 채 우리에게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전달했고 평화를 향한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안네의 일기」처럼 일기가 누군가에 의해 검열받지 않는다면, 일상의 소중한 기록이 누군가에 의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면, 진솔한 이야기가 담담하게 자리 잡게 될 것이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치부, 상황논리를 벗어난 미묘한 심리상태, 옳고 그름과 같은 가치판단이 배제된 솔직한 나의 감정 등이 일기장에 온전히 담겨질 수 있을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인권법이 9월 4일 발효됐다. 2005년 최초발의 후 11년 만의 일이다. 늦게나마 북한인권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 정부가 북한주민의 인권문제를 ‘책무’로 규정했다는 점에서 작은 위안을 얻는다. 북한인권법의 핵심은 북한 당국에 의해 자행된 인권유린 실태를 정부 차원에서 조사하고 이를 기록한다는 점이다. 탈북민들의 증언이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증언이 누군가에 의한 검열이 되고 가해자 처벌을 포함한 또 다른 목적이 될 수 있다면, 자기방어의 기제로 단순 사실의 나열이 될 가능성이 크다. 개학을 앞두고 써야만 하는 ‘밀린 일기’처럼 말이다. 반대로, 비밀이 보장되고 미묘한 감정과 치부까지 자유롭게 증언할 수 있는 상황이 마련된다면 베일에 가려진 인권 유린 사실들이 진실에 가깝게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안네의 일기」처럼 말이다.

나치에 의해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 속에서도 안네는 일기를 통해 하루하루를 견뎌낼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아픔과 상처가 온전히 반영된 기록은 치유의 과정이 되고 화해와 용서를 위한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한 기록은 단순히 ‘기록을 위한 기록’이 아니라, ‘기록을 통한 치유’, ‘진실을 향한 자유’가 돼야 한다. 어둠 속 진실에 귀 기울이고 가슴 깊이 맺힌 한을 풀어줄 수 있는 치유가 돼야 한다. 북한인권법 발효가 「안네의 일기」처럼 진실의 감수성으로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비밀이야기를 온전히 기록할 수 있는 소중한 일기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박현우(안셀모) 통일의 별(Uni Star)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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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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