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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소신과 소심 사이에서 / 오일환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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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간 한국사회는 보다 투명한 사회로 발전하려는 안간힘을 기울여왔다. 소셜 미디어를 통한 국민 여론의 고발, 감사원의 사회 각 분야 감찰과 책임자 문책, 부정청탁을 방지하기 위한 이른바 김영란법에 그 파파라치까지 등장하게 된 감시 문화 등을 보아도 나름 청렴한 사회로 나아 가기 위한 과도기적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청렴사회로 가기 위해 이처럼 끊임없는 적발과 처벌이 만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년도 국제 투명성기구(TI)가 밝힌 2015년 한국의 투명성 지수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머물고, 7년 연속 해당점수가 정체된 상태로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보다는 수많은 책임자 적발과 처벌이 난무하는 가운데, 우리가 생각하지 못했던 더 큰 것을 잃어가는 것은 없는 것인지도 생각해 볼만한 일이다.

사회학자들에 의하면 본래 인간에게는 특수이익과 보편이익이라는 것이 상충한다고 한다. 개인이 속한 집단과 국가가 얻을 수 있는 ‘보편적인 이익’도 중요하지만, 그에 비해 자신에게 직접 다가오게 될 ‘특수이익’이 더 중요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독일의 철학자는, ‘사회경제적 이해관계가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라는 말로 압축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속성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우리 사회 많은 영역에서 처벌만능주의가 만연할 경우, 사회조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반응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보신주의 또는 무사안일주의라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해보려 하다가 사고가 나느니, 조용히 자신의 안위를 지키는 방향을 선택하면서, 조직과 사회가 소리 없이 침체해 가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얼마 전 공무원들에 대한 국민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났는데, 부정부패 등 공직윤리 결여와 같은 문제들보다도 무사안일. 철밥통 의식 등이 더 큰 문제로 인식된 것이다. 이것은 비단 공무원에 국한된 것이라기보다는 우리사회의 각 조직에서 일을 수행하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무사안일주의는 몇 년 전 외환은행을 헐값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본 것처럼, 주요 책임자가 업무 수행 및 결정에 있어 향후 시행될 수 있는 감사원 조사나 검찰에 의한 징계를 피하기 위해 아예 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더 큰 문제는 소신을 가지고 발전을 위해 필요한 일들을 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번 감사원의 지적이 있었거나 행정처분이 내려지고 나면, 업무 담당자가 책임지게 되는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 관련 업무를 아예 원천 차단함으로써 문제가 될 소지 자체를 없애는 데 주력하게 되고, 이로 인해 업무는 더욱 위축되게 된다.

이를 반영하듯 우리나라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시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절대다수의 공무원들이 자긍심 고취 및 사기 앙양(53.2)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그들도 역시 위축되지 않고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을 갈망하는 것이었다.

결국 우리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보다 큰 이익과 발전을 위해 소신껏 일해야 할 사람들이 자신에게 다가올 불이익을 걱정해 소심해지게 되면, 그에 따른 피해는 기회비용의 상실이라는 형태로 소리 없이 눈덩이처럼 커지게 되는 것이다. 일을 하려는 과정에서는 일부 착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일을 아예 하지 않으면 실수도 없고 가장 안전하다. 어느덧 우리사회는 무엇인가를 잘해 보려는 쪽보다는 책임질 일을 아예 하지 않는 쪽으로 기울어 가면서, 점차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아무도 잘못한 사람은 없는데 큰 배가 소리 없이 가라앉고 있는 것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가장 위험한 상황이 아닌가? 이제는 소심증에서 벗어나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우리에게도 그런 영웅들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일환(알베르토) 가톨릭대 의과대학의생명과학교실 주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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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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