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사설] 적군의 영혼을 생각하는 위령미사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구상 시인의 시 ‘적군 묘지 앞에서’ 중 일부다. 한국전쟁 때 전사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가 안장된 묘지를 보며 느낀 감상을 절묘한 시어로 풀어냈다. 6·25전쟁 상흔은 끝이 없다.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눈 비극의 앙금을 털어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정치인들의 욕심 때문인지, 상처를 아물게 하는 과정이 너무 미흡하다. ‘이념적 증오를 초월한 화해와 포용’은 구호에 그치는가.

안팎으로 소란스러운 요즈음 용서와 평화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의정부교구가 적군 묘지에서 ‘용서와 평화를 구하는 위령미사’를 봉헌했다. 70년이 넘는 분단의 세월 동안 제대로 실천하지 않고 있는 형제애를 회복하자는 취지다. 위령성월에 미처 떠올리지 못 했던 영혼들을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됐다.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미사강론에서 “잘못을 용서하는 것은 자비로운 사람의 명확한 표현이고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계명”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도 ‘남과 북이 한 형제’임을 강조하고 ‘형제들에 대한 용서’를 말씀하셨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는 예수님 말씀을 실천하라는 얘기다. ‘숭고한 동족애와 휴머니즘 실천’이라는 다소 거창한 명분을 붙일 필요는 없다. 그냥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다 보면 자연스레 평화가 온다. 적군의 아픔을 생각하고 그들의 한(恨)을 달래주는 데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야 한다. 동포로서의 사랑과 적으로서의 미움이 공존하겠지만 이젠 사랑 쪽으로 추의 무게를 조금 더 기울여 보면 어떨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6-11-0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4. 25

시편 54장 8절
제가 기꺼이 주님께 제물을 바치오리다. 주님, 주님의 좋으신 이름을 찬송하오리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