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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가을의 막바지에서 우리가 꼭 배워야 할 것 / 이현숙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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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절, 자연이 뿜어내는 자태는 참으로 황홀하다. 저수지와 그 주변의 나무와 풀들, 높고 푸른 하늘. 특히 동녘에 떠오르는 태양에 반사돼 불그레한 빛을 발하며 떠 있는 ‘슈퍼문’과 조화를 이루는 물왕동 저수지의 아침 풍경은 찬란하다 못해 신비하기까지 하다.

지난봄 연록의 형광색 잎과 꽃망울은 수줍게 생명을 피웠고, 한여름 뜨거운 태양 아래, 다양한 색감의 짙은 초록 나뭇잎은 왕성한 생명력을 분출했다. 이제는 자신들의 생명을 다음 세대에 전달해 줄 열매에 모든 힘을 몰아준 다음, 노랑과 빨강, 주황, 갈색의 향연을 펼치면서 생을 마감하고 있다. 가을이 보여주는 생명 활동의 특징은, ‘내려놓아야 할 때를 알고 기꺼이 순응하는 모습’이다.

요즈음 대한민국은 ‘국정농단’, ‘최순실-박근혜 게이트’로 뒤숭숭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 있을 법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연출되고, 여기 연루된 이들은 마치 극 중의 주인공들처럼 자신들의 시나리오를 현란하게 꾸며낸다. ‘거짓 신념’과 ‘거짓 자아’를 가진 이들과 그 하수인들이 한 점의 죄의식 없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계속한다.

요즘은 여기에 대응하는 극 중 시나리오가 많이 달라졌다. 과거에는 선과 악의 대결이 분명했고, 선한 이들이 순진무구하게 악행을 그대로 참아 받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리떼 가운데서 뱀처럼 슬기롭고, 비둘기처럼 양순한”(마태 10,16) 행동의 조합이 엿보인다. 여기에는 ‘거짓 신념’에 대항하는 ‘이성적, 합리적 사고’, ‘불안’ 대신 ‘평화’, ‘아집과 고집’ 대신 ‘은근과 끈기’가 자리한다. 이 두 상황의 대결이 절정에 이르게 될 때 늘 생각지 않은 변수, 즉 ‘하늘의 도움’이라 할 만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늘 개입된다. 그리고 ‘진실과 사랑’이라는 인생의 가치가 승리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영화나 드라마는 그 결과를 바로 관객들에게 보여줌으로써 통쾌함과 감동을 선사한다. 반면 우리네 현실 상황에서는 진실이 밝혀지기 위해 좀 더 긴 시간이 요구되고, 객석에 있는 관람객의 입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권력과 ‘청탁’, 비합리적·비이성적 사고로 인한 소통의 부재라는 지병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 생명공동체. 지난 11월 12일 촛불 집회를 통해 우리는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고통이 그 임계점에 도달한 것을 확인했다. 여기서 사람들의 마음속 깊숙이 자리한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시민들의 성숙함도 보았다. 눈물이 핑 도는 숙연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 분노를 가벼이 보고 계속 방치하거나, 악화시킨다면 공자가 「역경」(易經) 계사전(繫辭傳)에서 “악이 쌓여서 가릴 수 없고, 죄가 커져서 풀 수가 없다”고 경고한 상황에 이르게 될 것이다. 반면 그 반대 상황도 가능하다. “역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그러므로 하늘로부터의 도움이 있으니 길하여 이롭지 않은 것이 없다.”

이 ‘가을의 외침’에서 그리고 시민들의 함성에서 나라를 이토록 혼란하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들이 진실을 알아듣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이렇게 궁한 시기에 국민 각자도 자신의 수준에서 이 변화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가 따르던 관행과 습관적 행동에 대해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 어이없게도 이 ‘거짓 신념’에 일조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주권자인 국민들의 시민의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 국민들은 이 시대를 위해 무언가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이들에게 준엄한 명령을 내리고 있다. 진실을 인양하고 이를 실행하라고. 이는 바로 예수의 가르침이다. 각자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대한민국 생명 공동체와 함께 파스카 신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현숙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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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6-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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