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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메마른 들에도 성탄은 오는가? / 오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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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세월처럼 올 한 해도 어김없이 저물어 가고, 성탄절이 우리에게 찾아왔다. 지구촌 어디에서나 성탄절이 가까워지면 일종의 설렘이 찾아온다. 초라하나마 색종이를 오려서 색동 띠를 만들고 이불솜을 떼어내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만들고는 뿌듯해하던 어린 시절의 추억부터 시작해서, 어른이 되어서는 힘들었던 한 해를 마무리하며, 새로 희망을 다지곤 했던 시간이었기에 성탄절은 누구에게나 설렘의 시간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왠지 성탄절을 맞는 거리가 유난히 허전하다. 거리에서 흘러나오는 성가들을 들어도, 한껏 분위기를 자아내려고 애쓰고 있는 백화점들의 바겐세일을 보아도, 뭔가가 빠진 것 같고 어색하다. 해마다 이때쯤이면 활기를 띠는 구세군 모금운동도, 금년에는 예년의 절반에 못 미치게 썰렁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뭔가 성탄절이 허전한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실제로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는 지금 세월호에 대한 씻기지 못한 상처와, 나날이 깊어가는 청년들의 취업난, 원치 않은 은퇴를 맞은 가장들의 어깨에 얹힌 삶의 무게에 더해, 노년층의 고령화의 뒷면에 드리운 그림자들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문제들을 안고 몸살을 앓고 있다. 거기에 또 대내외적인 경제적 위협과 국제적 정세의 가파른 변화들로 인해 총체적 불확실성과 위기의 시간으로 인식되어 지고 있건만, 정작 이 모든 문제들을 책임지고 해결해 나가야 할 지도층들은 오히려 무기력함과 부조리함에 갇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나날이 촛불민심만 타오르고 있는 상황이 되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그런 가운데 맞은 올해의 성탄절은 뭔가 허전할 수밖에 없고 먼 나라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도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든 가운데 찾아온 성탄절에 대해 우리가 또 한 가지 생각해 볼 부분도 있다. 그것은 성탄이 반드시 모든 것이 풍족하고 즐거운 환호에 휘청거리는 시간이기보다는, 깊은 고통의 한복판에서 우리에게 찾아오는 희망의 메시지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탄생하시던 그 성탄절에도 역시, 민중의 고난과 피로 얼룩진 헤로데왕의 비극적 통치 속에서, 두 살 이하의 모든 아기들이 살해되는 끔찍함 속에서 성탄은 이루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후기 조선시대 사회적 혼란과 외세의 영향으로 무척이나 삶이 암울할 때 천주교가 들어오면서, 성탄은 고통받는 이들에게 조심스러운 희망의 메시지를 잉태하는 역할을 해왔다. 이렇게 성탄은 오히려 삶이 척박하고 답답할 때, 메시아의 역사에 대한 기대를 통해 암울에서 희망으로의 엄청난 반전을 제시하는 역할을 해왔다. 그렇게 본다면, 2016년 성탄절은 비록 우리의 입술이 바짝 마르는 메마름 속에 찾아왔지만, 이 또한 우리에게는 희망을 향한 반전의 메시지일 수 있을 것이고 새로움을 잉태하는 희망의 시간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최근 진통을 겪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는 우리들에게 충격과 상실감을 주는 것은 맞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는, 이제는 대명천지 아래 누구의 비리도 허용하지 않는, 대통령도, 대기업의 총수도 예외가 없는, 사회적 정화기능이 싹트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OECD 국가들 중 부패지수에서 만년 상위권을 지키던 위치에서도 이제는 좀 벗어나, 더 건강한 사회로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 체력을 키울 가능성이 생겼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2016년의 성탄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춥고 메마른 우리들 가슴에 찾아온 만큼이나 부조리에서 합리로, 유착관계에서 투명성으로의 거대한 변화를 예고하는, 희망의 2017년을 예고하는 그런 성탄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메마른 들판에 찾아온 성탄은 바로 우리에게 찾아온 희망을 향한 반전이고, ‘털고 일어섬’의 시간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일환(알베르토) 가톨릭대 의과대학 의생명과학교실 주임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6-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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