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
사람과사회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말과 침묵] 닭을 위한 진혼곡

김소일 세바스티아노 보도위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김소일 세바스티아노 보도위원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을 보지 못했다. 시원한 바람도 쐬어 본 적 없다. 내 사는 곳은 무창계사. 창문이 없는 사육시설을 그렇게 부른다. 내가 딛고 선 발판은 흔한 종이 한 쪽보다 작다. 나는 모이를 쪼고 알을 낳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간의 세상엔 해가 뜨고 별이 지는가? 여기선 강렬한 인공조명이 낮과 밤을 정한다.

이따금 계사의 문이 열릴 때 그 틈새로 세상을 본다. 그곳엔 구름이 흐르고 들판이 펼쳐지고 삽살개가 지나간다. 흔들리는 아카시아 잎을 볼 때는 내 가슴에도 바람이 인다. 아는가? 우리에겐 원래 왕족의 피가 흐른다. 일찍이 숲 속에서 알을 품어 천년 왕국의 탄생을 알렸다. 새벽을 깨우는 고고성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우리의 몫이었다. 이 땅에 오신 성자가 수난을 당할 때 베드로의 마음을 흔들어 깨운 것도 우리 선조였다.

우리는 ‘볏을 가진 족속’이다. 붉게 솟아오른 수탉의 볏은 왕관보다 화려하다. 윤기 흐르는 깃털은 햇빛을 튕겨내고 꽁지깃은 휘어져 난초처럼 우아하다. 고개를 한껏 치켜든 채 늠름하게 걷는 수탉을 본 적이 있는가? 겁을 모르는 눈과 날카로운 부리까지 갖췄으니 가히 문무를 겸비했다. 성경에도 있지 않은가? ‘당당하게 발을 옮기는 것이 셋이 있으니, 동물의 왕 사자, 꼬리를 세우고 걷는 수탉, 양떼를 거느리고 가는 숫염소’(잠언 30,29-31)라 했다.

기억하는가? 우리가 홰를 치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한낮에 담장이나 지붕 위로 날아올라 금빛 울음을 토하면 한순간 우주가 숨을 멈추곤 했다. 우리의 수명 또한 잘 모르리라. 나는 산란계라 1년은 넘게 산다. 2년 채우기는 어렵다. 육계는 그저 한 달이 무섭게 팔려나간다. 행여 그것이 우리의 자연 수명이라 착각하진 말아다오. 야생에서 우리 종족은 20년 넘게 사는 일도 흔하다.

무슨 소용인가? 1년이든 한 달이든 무슨 차이란 말인가? 이 지옥 같은 창살 속에서 차라리 죽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이제 거대한 떼죽음의 파고가 덮쳤으니 이것은 재앙인가 축복인가?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아오는데 당신들은 집단 도살의 광기를 부린다. 이른바 ‘살처분’의 이름으로 삼천만 마리 넘는 우리 일족에게 죽음을 안겼다.

나 이제 산 채로 구덩이에 떨어져 마지막으로 하늘을 본다. 그토록 보고 싶던 하늘은 잿빛이더라. 레퀴엠의 선율은 들리지 않더라. “훔치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 / 죽이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 / 재판도 없이 / 매질도 없이 / 구덩이로 파묻혀 들어가야 한다”(김혜순)

아아, 눈물 따윈 흘리지 않으리라. 차라리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리라. 쏟아지는 흙비 속에서 나는 그분의 기도를 읊는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듣노라.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4-5)

두려워 말라. 너희 몸속에 내가 있노니 우리는 한 생명이다. 나는 ‘치맥’과 삼계탕과 계란찜으로 너희 속에 있고 빵과 포도주로 거듭나 다시 한 몸을 이룰 것이다.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죄악을 감춘 땅 위로 꽃 한 송이 피어나리니 그 선홍빛 꽃잎을 보거든 부디 이 순환의 법칙을 기억해다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7-01-18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3. 29

시편 70장 8절
주님의 영광을 노래하고자, 저의 입은 온종일 주님 찬양으로 가득 찼나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