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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내 양들을 돌보아라” / 박명기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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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시작되는 12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인 요즘 각 교구별로 사제, 부제서품식이 거행되고 있다. 지난 2월 1일 의정부교구에서도 서품식이 있었고 8명의 사제와 7명의 부제가 새롭게 탄생했다. 본인들의 마음이야 서품성사의 은총으로 충만하겠지만 나는 무릎 꿇고 있는 후배 신부들 머리 위에 서품 안수를 하며 많은 생각이 오갔다. 24년 전에 저렇게 무릎 꿇고 선배 신부님들의 안수를 받으며 했던 내 눈물의 다짐들이 떠오르기도 했다. 지금이야 그 어린 다짐이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알지만, 당시에는 마치 내 온 생을 투신하여 살 것 같았던 자신감과 의탁이 있었던 것 같다. 후배 신부들에게 안수를 하며 이 비겁한 선배보다는 훌륭한 사제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사제서품식은 사도시대부터 시작된 가톨릭의 전통이다. 천주교에서 사제로 살아갈 사람들을 서품의 은총으로 축성하는 7성사 중 하나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사랑을 확인하고 마지막으로 부여하신 사명이 내 양들을 돌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착한 양들은 아니었고, 사제가 선포하는 복음도 동창 신부의 표현에 따르면 모든 이에게 듣기에 좋은 복음만은 아니었다.

신자들이 시대적 상황에 따라 새롭게 다가오는 사태를 복음 정신에 입각해서 바라보기 위해서는 교회의 가르침이 가장 중요한 법이다. 그러나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기쁜 소리만 듣기 바라는 이들에게 복음 선포는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가르치고 이끄는 대로 따라오는 양들이 아니라 오히려 가르치고 끌고 가려는 드센 이리를 닮은 양들도 있다. 그들에게 시대를 분별하는 복음 정신과 사회교리적 교회의 가르침은 종북 좌파의 이념과 노선으로 치부되어 눈 감고 귀 닫게 만들고, 심지어 사제에게 빨갱이라는 낙인마저 찍기도 한다. 성당 건물 밖의 세상일은 외면한 채 열심히 미사와 기도하며 봉사에 빠지지 않는 양의 역할이 아니라, 예수가 살았던 것처럼 세상 안에 살면서 복음의 눈으로 시대를 바라보고 교황의 가르침대로 교회 밖으로 뛰쳐나가야 한다는 사제의 외침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는 신자들에게 불편한 소리에 불과했다.

지역 교회에 맞는 사목을 위해 한국 주교회의에는 교회법이 요구하는 여러 위원회가 있다. 특별히 정의평화위원회의 경우 시대 상황에 따른 복음적 가르침과 교회 입장을 성명서 형식으로 발표해 한국 천주교인들의 지표가 될 수 있도록 돕는다. 하지만 대다수의 신자들은 복음적 식별이 되는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의 가르침이 있다는 것과 시대의 상황에 따른 교회의 공식적 입장을 본당의 사제들이 알려주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예수가 걱정한 대로 세상은 착한 양과 이리 탈을 쓴 양들이 뒤섞여 있기에 그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신앙인다운 복음적 시각과 견해를 전해주어야 하고, 오늘날같이 정치와 경제, 문화가 극심하게 양분된 사회에서 사제는 공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교회의 역할과 신앙인의 삶을 가르쳐야 한다. 그것이 양들을 돌보는 것이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며, 양들을 돌보기 위한 지침이고 방향이다. 그 지침은 시대의 흐름 안에서 신앙인이 어떤 현실의 삶을 살지 알려주는 가르침이고 방향이다. 복음이 자신이 듣기에 기쁜 소식이 아니니 기쁘게 들을 수 있는 말만 해야 한다고 사제를 다그친다면, 복음은 더 이상 복음이 될 수 없다. 가톨릭교회의 수장이신 교황이 가르치고 지역 교회의 주교들이 가르치는 교회의 공식 입장이 불편하게 들리니 교회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커다랗게 잘못된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맡긴 사명은 양들을 돌보라는 것이었다. 사제는 자신이 복음적이고 야전 병원과 같은 참다운 교회의 삶을 살아가며,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복음을 선포하고 양들을 돌보라고 오늘도 서품성사로 축성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명기 신부(의정부교구 마두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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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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