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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진실을 말할 용기 / 오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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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과도 같은 역사의 콘트라스트다. 대통령 박근혜가 파면되자 세월호가 인양되고, 국정농단 피의자 박근혜가 구치소로 들어가자 세월호가 맹골수도를 떠나 목포신항으로 들어왔다.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의 대통령 행적이 진실을 밝히는 쟁점이었는데, 검찰 조사를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조서를 살피는 데 7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또 세월호 인양이 시작된 날 세월호 리본 모양의 구름이 나타난 사진이 SNS를 통해 많은 공감을 받았다. 게다가 올해 예수 부활 대축일은 세월호가 침몰했던 4월 16일이다. 이 기막힌 우연, 아니 어쩌면 필연을 어쩔 것인가.

세월호가 올라온다는 소식을 듣고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눈먼 자들의 국가」를 다시 펼쳐 읽었다. 모두 세월호의 시간을 잊지 않고,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려는 기록이다. 당시 책 제목과 같은 ‘눈먼 자들의 국가’를 쓴 작가 박민규는 “세월호는 선박이 침몰한 ‘사고’이자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명토 박아 두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개가 사람을 물면 사고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사건”이라면서, 사건은 그 의미를 묻고 해석을 요구한다고 했다.

세월호는 단순한 해상 사고가 아니었기에 보상만으로 처리될 문제가 아니었다. 시민들은 세월호의 진실을 물었다. 하지만 진실을 물을수록 세월호는 노란색만 보면 경기를 일으킨다는 사람들로 인해 더 깊이 숨어버렸다. 은폐의 현실 앞에 모든 것은 불신되었다. 박민규 작가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세월호가 침몰한 그 순간부터 너무나 많은 거짓말, “사상 최대 규모의 거짓말”에 절망했다. 그러나 작가의 지적대로 “내 구명조끼 입어”, “사랑해”라는 말을 남긴 아이들을 생각하면 아무리 고통스러워도 우리는 눈을 떠야 한다. 우리가 진실 앞에 눈을 감으면 “끝내 눈을 감지 못할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이 흘렀고, 어마어마한 국정농단의 현실이 드러나자 세월호는 조금씩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삶의 원칙은 파레시아(parrhesia), 솔직하게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진실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담대함’이 그들의 정치적, 도덕적 의무였다. 실천적 지식인으로 알려진 미셀 푸코의 철학적 유언이기도 했던 파레시아는 ‘진실을 향한 용기’를 의미한다. 파레시아는 힘 있는 자들의 언어 행위가 아니다. 힘없는 자들이 힘 있는 자들을 향해 목숨을 내놓고 진실을 말하려는 담대함, 곧 ‘진실을 위한 용기’이다. 이 파레시아가 없었기 때문에 그 똑똑하고 잘난 인간들이 허망한 권력 앞에 무너졌고, 철창신세까지 지게 되었다.

오순절 사건 이후 사도들의 복음 선포에서도 그러한 파레시아가 요청됐다. 우리말 성경은 파레시아를 ‘담대함’으로 번역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이 파레시아를 상기시키고 복원시킨다(259항). 또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월호 노란 리본을 단 것을 두고 정치적으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하자, “고통 앞에 중립을 지킬 수는 없다”고 했다.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에 명쾌했다. 주님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놀라운 사건을 선포하는 사도들의 언어는 로마 제국 권력자의 언어와는 달리 담대함이 필요했다. 사도들에게 있어 파레시아는 그들이 주님에 대해 ‘보고 들은 진실을 가감 없이 모두 전달하는 것’이었다. 진실을 말하는 사도들은 자유로웠다. 진실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해방시키는 사람이지만, 진실을 은폐하는 자는 스스로를 구속하는 사람이다.

구세주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며 호산나를 외친 주님수난성지주일에 세월호는 마침내 지상에 몸을 누였다. 세월호와 박근혜, 이 둘은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다. 박근혜의 삼성동 골목선언을 빌리면 “시간은 걸리겠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아직 세월호 말만 들어도 울컥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부활의 시간은 진실이 드러나는 시간이다. 아이들이 오고 있다.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민환(바오로)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 연구실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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