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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이즈음에, 우리 것을 우리 문화를 키우자 / 유희석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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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민족에게 한 줄기 서광이 비치고 있다. 거룩한 책임감을 구차하게 여긴 이 나라의 수장이 탄핵을 당한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이미 비선의 주동자와 그 야합세력이 휴지처럼 나뒹굴고 있으니 말이다. 삶을 윤동주처럼 오롯하게 살아내기란 쉽지 않지만, 한 올의 양심이라도 부여잡았다면 치욕의 낭떠러지 경험만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 덕분인지 지금, 단아한 한 줄기 빛이 이 상서로운 땅을 휘감고 있다. 이 작은 나라에도 정녕 아름다운 무지개가 피어오를 것인가.

그리고 또 하나의 희망이 떠올랐다. 오매불망 3년을 물속에서 숨죽이던 세월호가 고래처럼 큰 숨을 쉬고자 뭍으로 떠올랐다. 참 오래도록 외면당해온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세월만큼이나 긁히고 상처 난 그 고래 등을 쓰다듬으며 모두가 숨죽인 채 바라보고 있다, 어떻든 살아나기를. 이때에 기적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로또와 같은 허세와 거짓이 아니라면 어떤 것도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살아가는 맛을 느꼈으면 좋겠다. 나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정의가 일어나고, 흙수저가 꿈을 꾸고, 헬조선이 사라지고, 진실이 승리하는 그런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니 이즈음엔 태극기도 제대로 서야 한다. 성조기를 끼고 도는 힘없는 태극기 말고, 그 자체로 위풍당당한 태극기로 서야 한다. 아무 때나 흔들리고 시위 때만 팔랑거리는 태극기는 참말 값싸 보인다. 숭고한 국기의 거룩함을 안다면 함부로 나부끼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럴만한 때에 그렇게 나부껴야 한다.

말 나온 김에, 이때를 맞아 정치니 경제니 문화도 다 한국식으로 확 바뀌었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한국형 민주주의와 나눔 경제와 한류 문화로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젠 그럴 때가 됐다. 한국식, 한국형이라고 흔한 민족주의(nationalism)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우리의 것을 많이도 잃고 살아왔다. 무엇이 우리 것이고, 어떤 것이 한국인의 삶인지 알지 못한 채 남의 나라에 기대어 잘도 살아왔다. 이젠 우리 것을 되찾고 우리의 삶을 온전히 살아갈 때가 됐다. 그래서 우리 문화를 사랑하는 풍토를 하나씩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띄어본다.

남의 것을 사다가 우리 것 인양하는 거 말고, 남의 나라 눈치 보는 거 말고, 참말로 우리의 것을 우리 방식으로 키우고 살려내는 한국적 풍토를 가꾸는 것이다. 이것이 신토불이(身土不二)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입고, 우리의 가옥인 한옥을 자랑삼으며, 우리의 문화인 한류에 순풍을 달아주는 것이다. 이땐 신명 나는 사물놀이도 탈춤도 제격이다. 우리 것이 좋은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이때를 맞아 교회도 한국식으로 체질변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 서양의 고딕식과 정체불명의 건물만을 고집할 것인가. 나는 사찰을 부러워한다. 푸른 산속에 자리한 것도 그렇고, 전통 한옥으로 꾸며진 것이 부럽고, 무엇보다 자연과 함께 하는 품이 부럽고 부럽다. 흐르는 기와의 선이 유려하고, 단순한 색조의 단청이 곱고, 겸손한 창살 너머 구도자의 염불소리조차 청아하다.

내가 사찰을 부러워하는 이유는 우리의 것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은 어떤 것이 예배당이고 성당인지 분간하기조차 어렵다. 흡사 외국인양 하늘 높이 치솟은 고딕양식은 우리의 전통과 거리가 멀다. 이유야 없지 않겠지만 우리가 우리의 것을 자랑삼지 않는다면 외국인이라도 좋아할 리 없다. 이점에서 우리말로 바꾼 새 본당이름들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스무숲, 샘밭, 솔모루…. 듣기만 해도 정이 붙는 말이다.

우리의 것이 고궁박물관을 가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라면 한국인의 자존심은 박물관에만 있는 것과 같다. 단아한 한옥 성전을 만나고 싶은 이유는 오직 우리 것의 소중함과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되찾고 싶기 때문이다. 신토불이(身土不二) 정신은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뿌리내리는 한국적 토착화(土着化)의 다른 이름이라고 할 것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희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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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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