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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화해·일치] 데블스 오운(Devil’s own) / 윤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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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래드 피트가 나오는 영화는 꼭 본다. 최고의 배우이기도 하지만, 메시지가 다 강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를 주제로 하는 영화도 꼭 본다. 아름다운 서정의 나라이기도 하지만, 역사적 상황이 우리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아일랜드도 분단국이다. 또한 북아일랜드는 영국세력과 독립세력으로 분열돼, 세력 간 갈등은 유혈투쟁으로 재현됐다. 아일랜드 출신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3명이니 그 반목의 골이 능히 짐작이 간다. 게다가 4번이나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인구대비 세계 최고다. 노벨문학상과 평화상은 정신세계의 지표라는데, 이런 의미에서 아일랜드는 가장 깊은 영성을 지닌 나라다. 그 아름다운 영성은 오랜 고난과 역경으로 깊어진 천주교 신앙으로 연마된 것이다.

1998년 4월 성금요일 협정이 있기 전까지 IRA(아일랜드 공화국군)는 북아일랜드 독립을 위해 전쟁 수준으로 영국의 압제에 저항했다. 영화 ‘데블스 오운’에서 IRA 단원으로 나온 주인공 브래드 피트는 미사일을 불법구입하기 위해 미국까지 간다. 독립과 통일도 중요하지만, 대량살상무기는 과도한 선택이었다. 선량한 양민들이 죽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에겐 동족을 위한다는 더 큰 뜻이 있었다.

대의와 현실! 어느 것이 더 큰 허위일까? 세계에서 데블스 오운이 가장 높은 밀도로 배치돼 있는 곳은 한반도다. 동족상잔이 재발되면 10분 내에 1000만의 양민이 죽을 수도 있다. 67년 전보다 수천 배 더 큰 비극이 재발되는 것이다. 나쁘게 반복되는 역사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 한없는 군비경쟁은 민중을 비탄에 이르게 한다. 천문학적인 군수 비용을 복지비용으로 전환하면 우리는 최고의 복지국가가 될 수 있다.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선 먼 훗날의 통일보다는 민족화해를 우선 추구해야 한다. 모세 같은 선지자가 민족을 구원해주는 것도 기다려야 하겠지만, 북쪽에 사는 동포들이 ‘제거해야 할 적이 아닌 정을 다시 나눠야 할 또 다른 우리’라는 의식의 전환이 절실하다.

100년 전 아일랜드는 해방을 위해 두 민족 ?켈트계 아일랜드인과 영국계 아일랜드인? 간의 위대한 통합을 이뤄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같은 핏줄끼리도 화해하지 못하는지 아쉽기만 하다. 민족 간의 화합에는 아일랜드 언어예술가들의 문예부흥이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우리는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예술가들을 핍박하는 비루한 현실 속에 있다. 단테의 「신곡」과 베르디의 오페라가 이탈리아를 통일했다. 화해를 주제로 하는 소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에는 “역사는 깨어나야 할 악몽이다”라는 대사가 나온다. 악몽을 반복해선 안 된다.

‘데블스 오운’에서 브래드 피트는 죽어가며 “남북아일랜드에 해피엔딩이 있을까요?”라며 울먹인다. 우리도 매일 “남북 코리아에 해피엔딩이 있기를!”이라고 절규에 가까운 기도를 해야 한다.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해본 적이 없는 우리에게 왜 악마의 도구가 그리 많아야 하나? 하느님은 데블스 오운을 매우 싫어하신다.


윤훈기(안드레아) 토마스안중근민족화해진료소 추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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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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