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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생명 상생 평화 / 이향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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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빛을 향하듯 모든 생명체는 본래적으로 고유한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이는 생명이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지향성은 혼자의 힘으로 이룰 수가 없다. 지향성이 한 존재의 궁극적 성향이라면 이미 한 존재로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스스로 있는 존재는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존재성을 유지하려면 다른 존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존재가 다른 존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다른 존재에 의하여 존재의 의미를 갖고 지향성도 갖게 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서로 다른 존재는 각각의 존재가 필요로 하는 존재의 조건에 서로 상응하는 상호적 관계가 필요하다. 이 관계가 치우침이 없이 균형을 유지한다면 모든 존재의 삶은 평화로울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인간 생명도 다른 존재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지향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간의 생명은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에 비해 외부의 도움을 특별히 많이 필요로 하고 있다. 어린아이의 나약함은 공동체의 협력을 더욱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가정 공동체는 아이를 위해 더욱 결속하게 된다. 이는 인간 생명이 특별한 지향성을 가지고 있음을 말해준다. 어린아이와 노인에게서 그렇듯이 인간에게서 생명성은 약할 때 더욱 그 의미가 드러난다. 여기에 상생의 생명법칙이 작용한다. 그러나 생명의 배려는 일방적이거나 대응적이지 않다. 생명의 법칙은 받은 만큼 돌려주거나 받은 자에게 돌려주는 교환의 법칙이 아니다. 상생의 법칙은 관계를 통하여 고유한 생명의 의미를 발견하는데서 시작된다. 생명의 차원이 고양될수록 관계는 새롭고 심오한 의미를 부여한다. 자연적 차원에서는 상호 간의 생존만을 생각하지만, 사회적인 차원에서는 삶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나아가 종교적이거나 도덕적 차원에서는 삶의 완성이 무엇인지 생명의 지향점을 깨닫게 된다.

생명은 하나의 씨알과 같아서 완성을 이루게 되면 다 자라난 나무가 그늘을 베풀 듯 사람들에게 평화를 선사한다. 생명이 주는 열매인 평화는 모든 존재가 그 다양성을 발휘하고도 전혀 혼란을 일으키지 않는 상생의 평화이다. 평화는 아무 일이 없이 조용한 것이 아니라 조화의 극치를 이루는 것이다. 다름과 차이를 받아들이고 함께 어울려 새로운 조화의 모습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굿이 끝난 다음에 모두가 혼연일체가 되어 춤을 추는 난장에 진정 평화의 모습이 있듯이 진정한 평화는 역동적이다.

평화는 진실로 단순히 기다리는 자에게는 다가오지 않는다. 하느님이 사랑의 무한한 하강을 통하여 인간과 일치하는 신비 속에 새 생명의 씨를 심으셨듯이 우리 모두의 생명에는 하느님이 몸소 경험하셨던 참혹한 고통과 죽음을 이겨낸 부활의 씨알이 담겨있다. 이는 우리가 장차 이루어낼 평화를 이루는 씨알이다. 자신의 생명이 평화의 씨알임을 자각하는 자는 생명의 환희로 인하여 잠들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생명상실의 시대’를 살고 있다. 매일 매스컴이 전해주는 그칠 줄 모르는 어두운 소식은 테러와 전쟁으로 인한 무고한 희생과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생태계의 심각한 훼손이다. 부정의로 말미암은 생명의 상실은 평화의 터전을 잃어가는 것이다. 생명의 씨알이 갈라지고 메마른 땅에서 싹을 틔울 수 없듯이 사태의 올바른 인식 없이는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생명의 상실은 세상의 상실이다. 세상은 생명이 살아있을 때 비로소 세상이 된다. 세상은 상생의 터전이자 조화의 장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생명이 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다른 종과 다른 생명체와 나아가 무생물과의 관계를 확인하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존재로 말미암아 내가 존재하듯이 다른 존재가 나로 말미암아 존재함을 확인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존재는 내 생명성을 확인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실로 생명은 맑고 맑은 거짓 없는 거울이다. 사랑을, 평화를 그리고 주님을 그 안에서 찬미하게 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향만(베드로) 가톨릭대 의대 인문사회의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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