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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축복엔 계절이 없다 / 한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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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것이 강하다. 어쩌면 이러한 명제가 기도에 스며드는 힘이다. 저마다 하루를 홀로 겪어야 하는데 믿음이 있다면 스스로한테 보내는 뭉클한 격려로 삼아 오롯이 버텨 내게 된다. 그래도 문득 시간의 가속도 앞에선 멀미나는 쓸쓸함을 느끼지만, 나이 든다는 것은 목신의 오후 같은 가을을 만나는 기쁨이다.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은 각축의 조급증을 내려놓고 평온하게 깊이를 찾는 태도로 선회할 수 있다. 기교로 가득한 발레에서 드미 꾸뻬라고 부르는 ‘작은 단절’, 다른 동작을 시작하기 전의 준비를 뜻하는데, 이렇듯 의도된 제어는 삶에도 쓰일 만하다. 가끔은 생각의 여백을 마련해야 미로에 갇힌 듯 어지러운 아포리아의 시절에 속내를 추스르고 다시 활기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이 소란한 도시에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이 필요하다. 조예 깊은 철학가들은 숲을 산책하며 명저를 구상했다고 한다. 오늘날의 존재는 새장 속 광대를 닮았다. 다들 그 어느 무렵보다도 자유로운 듯 보이는데 가만 살피면 서로 비슷한 틀에 갇혀 있는 빤한 삶이다. 비우면서 오히려 스스로를 채울 수 있는 기도의 충만함으로 속내를 다듬으며, 웅변보다 공명이 큰 침묵다지를 실현하고 싶다.

‘나의 눈은 봄비가 내리는 풍경만을 위하여 존재한다’라고 말한 자연주의 연작 화가의 토로가 생각난다. 봄에 깃든 근원적 생기는 번잡한 삶에 시달린 사람들한테 정감 어린 희열을 안기는 듯하다. 명랑한 여름도 스쳐가고 어느새 또 다른 계절이 다가온다. 땅 위의 모든 것들이 날씨 따라 달라지는데 주님의 말씀처럼 늘 똑같이 곁에 함께하는 것이 있음은 참으로 귀한 고마움이다. 피조물은 선을 추구하며, 꽃이 져도, 축복은 어김없이 피어난다.


한분순(클라라)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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