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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차쿠 /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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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차쿠’는 한국 신자들에게 의미가 깊은 곳이다. 요동 지역에서 조선 땅과 가장 가까웠던 탓에 1867년 이후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들은 이곳에 머물며 입국을 준비했다. 압록강이 얼어야 강을 건너 조선 땅에 들어갈 수 있었기에, 선교사들은 여기서 결빙을 기다리며 한국말과 풍습을 배웠다고 한다. 마치 선교사들의 대기처와도 같았다. 조선대목구는 1869년 여기서 제2차 성직자 회의를 개최하기도 했다. 조선교구 대표부가 있었고 조선신학교도 설립됐다. 인근에는 김대건 신부가 4통의 서한을 썼던 ‘백가점’이 위치해 있다.

그 무엇에 앞서 이 장소가 좀 더 한국교회에 가깝게 다가오는 것은 가경자 최양업 신부의 첫 사목지라는 점 때문일 것이다. 현재 차쿠에는 중국 연수 중인 청주교구 이태종 신부가 교육관을 짓고 최양업 신부의 영성을 알리고 있다. 차쿠에 양로원을 지어 중국사제들의 노년을 도울 계획도 지니고 있다는 이 신부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 ‘김대건 최양업 신부님의 빚을 갚는 일’이라고 했다. 빚을 갚는다는 의미를 ‘보편교회의 이름으로 중국교회와 동행을 해주는 것’으로 풀어주었다.

알려진 대로 1831년 조선교구가 탄생할 때까지 조선교회가 속했던 북경교구는 선교사 파견 등 조선교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많은 지원과 노력을 기울였다.

2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김대건 신부와 최양업 신부의 사제로서의 열정과 자취가 서린 차쿠에서, 또 종교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중국에서 한국 사제에 의해 이러한 역사와 기록들이 조명되고 있는 모습이 특별하다.


이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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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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