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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독서는 거룩한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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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할 수 있을까?

그 누가 “독서는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아무나는 할 수 없다”고 했다. 주님께서 선택을 해 주시는 허락이 있어야만 된다고 했다. 신부님의 말씀이 끝나고 침묵이 흐르는 순간, 나는 매일미사책을 들고 단상에 올라갔다.

오늘 이 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이 읽었던가. 제목부터 조금 낯설다.

“토빗기의 말씀입니다.”

지금 내 시력은 정상이 아니다. 이미 한쪽 눈은 시력을 잃은 지 오래다. 황반변성이라는 병, 약 1년 전부터 치료를 받고 있으나 아직도 글자가 확실히 보이지는 않는다. 이런 상태에서 독서를 한다는 것은 실은 무리였다. 그래도 나는 꼭 해야 한다는 주님의 부르심 때문에 읽고 또 읽고, 돋보기를 끼고, 확대경을 들고 이리저리 옮겨 보면서, 아침저녁으로 시간마다 읽어보았다. 그리고 어렴풋이 내 머리에 내용이 뿌리를 내렸다.

자꾸만 읽다 보니 사라가 너무 불쌍했다. 일곱 남자를 하룻밤을 보내지 못하고 모두 떠나보내야 했던 여자로서의 기구한 팔자가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착한 사라는 그래도 주님의 은총이 있어 끝내 한 남자 토비야를 만나 그 밤을 잘 보내게 되었으니 마지막에는 내 마음이 참으로 행복했다.

긴 독서, 또 많은 외국인 이름을 가진 주인공들…. 단상에 올라가기 전, 수녀님과 본당 노인대학인 ‘청춘흰돌대’ 선생님들께서 교실에 불러 연습을 도와주셨다. 신부님과 많은 형제·자매님들께서 숨죽여 지켜보았던 그날의 독서.

끝날 무렵 “주님의 말씀입니다” 하고 단상을 내려오는 순간, 조용한 환호성이 들렸다.

‘눈도 안 좋은데 참 잘했다.’

미사가 끝나고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어느 자매님 한 분이 가까이 오시더니 “오늘의 독서자는 주님께서 선택하셨어요”라는 인사를 건네주셨다. 이렇게 긴 독서를 하게 된 것도 분명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을 그 자매님을 통해 깨달았다.

책처럼 읽지 말고 상대방과 대화하는 것처럼 읽어야만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게 들을 수 있다고 걱정해 주시던 예쁜 수녀님의 모습이 오늘도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주님, 독서를 통해 기도를 많이 할 수 있게 이끌어 주심에 너무도 감사합니다.


전옥련(이레네·부산 남천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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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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