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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놀면 뭐해, 한 잔 해 / 하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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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우리는 ‘술 권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인기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며칠간 폭음하는 장면을 낭만처럼 묘사한다. ‘혼술남녀’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더니, 예능프로 ‘미운 우리 새끼’에서는 소주를 생수통에 채워 먹는 장면이 희화화되어 전파를 탄다. 주류 광고에는 청소년들이 모델링하기 쉬운 유명인들이 등장한다. 맥주는 시원하고, 소주는 순해져서 누구나 즐길 수 있다고 유혹한다. 매스미디어는 술을 마시는 것이 얼마나 즐겁고 유쾌한지에 대해서만 말한다. 술을 경계하고 조절해야 한다는 메시지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반면 선진국은 ‘술을 경계하는 사회’다. 술 광고는 유명한 연예인 하나 등장하지 않고 밋밋하게 상품만 진열하는 수준이다. 영화에서 술 마시는 장면이 나올 때에도 파티에서 살짝 입을 대는 정도이지, 갈등과 좌절 때문에 폭음을 하는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러한 차이로 인해 우리 청소년들은 성장기 내내 ‘술의 유혹’에 노출된다. ‘나도 연예인처럼 멋지게 한 번 마셔보고 싶다’, ‘정말 힘들고 괴로울 때는 술을 마시는 것이로군!’, ‘뻗을 때까지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는 것도 낭만이야!’ 청소년이 술을 마시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비행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술을 마셔본 경험이 있는 청소년이 75이고 월 1회 이상 술을 마시는 청소년도 25나 된다.

술 문제로 병원을 찾은 청소년을 만나는 일은 당혹스럽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술에 취해 외박을 반복하거나, 친구와 주먹다짐을 해 눈이 시퍼렇게 멍든 아이들은 약과다. 친구들과 옥상에서 술을 잔뜩 마신 후 함께 뛰어내리기로 했다가 경찰에 의해 발견된 아이들도 있었다. “어른들은 다 마시잖아요? 조금 빨리 술을 마신다고 별다른 점이 있나요?” 그들의 항변을 들을 때면,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청소년들이 술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주지 않는 것을 한탄하게 된다.

왜 술로부터 청소년을 보호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의 뇌는 20대 초반까지 성장한다. 특히 이성 판단을 담당하는 전두엽은 마지막에 자리 잡는다. 이 시기에 술을 마시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우선 술을 조절하지 못 한다. 본래의 뇌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아지면 졸음, 두통, 구역을 유발해서 더 이상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조치한다. 그러나 청소년의 뇌는 아직 계기판과 브레이크를 갖지 못 했다. 그래서 술에 취했을 때 더 충동적이고 위험한 행동을 한다. 청소년 음주로 벌어지는 폭력 사건이 한 해 4000건이나 되고, 심한 경우 자살에 이를 수 있다. 아예 인격 자체가 충동적이고 폭력적으로 변하기도 쉽다. 더 심각한 것은 청소년기에 술에 노출되면 알코올중독에 걸릴 확률이 5배 정도 높아진다는 사실이다.

사실 중독자가 된 이후 치료하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병을 예방하고 관리하는 편이 훨씬 쉽고 효율적이다. OECD 30개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음주통제정책 강도는 22위에 불과하다. 선진국들은 술을 흥청망청 즐기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다. 조심하고 경계하며 향유하는 문화가 이미 형성되어 있다. 주류 판매 면허제, 가격 정책, 공공장소 음주제한 같은 제도를 도입했다. 주류 광고에 대해서도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규제한다. 이는 모두 청소년이 술의 유혹에 놓이지 않도록 배려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기성세대의 몫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청소년들에게 하신 충고의 말씀을 함께 기억하고 싶다. “앞으로의 세상을 아름답고 진실하고 선하게 만들려면 시끄러워야 합니다. 그 의미는 많은 해악을 끼치는 기존 문화와 시대조류에 도전하고 맞서라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를 조금 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문화에 용감하게 맞서는 것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의 하나입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종은(테오도시오·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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