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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한담] ‘무남편 상팔자’에 대한 소고 / 황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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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송에서 부부가 나와 티격태격하며 서로 일러바치는 것을 보았다. 배우자가 자신과는 달리 이상하게 행동한다고 적나라하게 까발리며 듣는 사람들로부터 상담을 받았다. 나중에는 누가 더 잘못했는지 결판도 났다.

나는 매주 갈등을 겪는 부부들이 나와 다른 사람에게 일러대는 것을 보며 ‘무남편 상팔자’구나 하는 자부심을 가졌다. 화장실 물도 마음대로 내리지 못하게 하는 남편도 없고, 간이 맞니 안 맞니 반찬 타령하는 남편도 없으니. 어떤 때는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이 고맙기까지 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나는 지인들과 풀이 많은 식당에 장어구이를 먹으러 갔다가 진드기에게 물린 적이 있다. 그날 저녁, 등에 뭐가 걸리적거려 손을 뻗어 보았다. 등짝 한복판에 뭔가 잡히는데 정체를 알 수 없었다. 몇 번 떼 내려고 시도를 했지만 여의치 않아 포기하고 잤다. 이튿날 어찌어찌해서 만난 사람들에게 등짝을 봐달라고 내밀었는데, 본 사람들이 기절초풍 소리를 질렀다. 살아있는 진드기라고! 떨어지지 않는다고 또 소리를 지르고, 몸통은 떼 냈는데 입은 박혀 있다고 난리였다. 핀셋으로 어렵사리 진드기 입을 빼낸 후 응급실로 갔다. 24시간이 넘도록 그놈과 함께 보낸 시간이 소름 끼쳤다. 살이 되고 피가 되는 장어구이를 먹었는데, 살만 남겨두고 진드기가 피를 다 빨아먹다니.

다행히 ‘살인진드기’가 아니라 죽지는 않았지만, 정말 식겁했다. 그 후로는 성당에서 부부가 나란히 앉아 성가책을 넘기는 모습을 보면 부러웠다. 분명 부부가 맞는데, 멀뚱멀뚱 서로 딴청을 피우고 있어도 부러웠다. 등에 박힌 진드기라도 떼 줄 수 있는 사람이면 뭐. 단연코 ‘무남편 상팔자’는 아닌 것 같다.


황광지 (가타리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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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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