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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너는 보고야 믿느냐? / 김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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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없이 주고받은 말들이 칼날이 되기도 하고 툭 던진 말 한마디가 ‘쨍그랑’ 하늘을 깨기도 한다. 언젠가 돌고 돌아 나에게 다시 오는 것을 모르고….

우리의 믿음은 하느님 식탁에 초대받은 미사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성당에서 혹은 다른 단체에서 오랫동안 봉사랍시고 이일저일 하다 보니 ‘신부님도 미사 드릴 때만 신부님이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것 같아’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사제가 ‘예수님의 대리자’라는 것을 망각하고 평신도에게 말하듯 편하게 대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럴 때 신부님께서는 조용히 “옆집 아저씨한테 말하듯 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정중하게 말씀하시곤 했었다. 노인대학에서 교무를 맡아 일할 때도 신부님한테 버릇없이 대한다고 걱정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일까, 예수님께서 저에게 “너는 보고야 믿느냐” 하시며 ‘깜짝 데이트’(환시)를 청하신 것 같다. 어느 날 미사 중, 거양성체 후 양손을 들어 기도하시는 신부님의 왼손에서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모습이 보이는 게 아닌가?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어~~~” 하면서 혼잣말로 “예수님이 신부님 왼손에 계시네”라고 했다. 속으론 ‘신부님께서 제대 위에 예수님 상을 올려놓고 미사를 하시는데 잘못 보았나’라고 생각하면서 눈을 비비고 발뒤꿈치를 들고는 까치발을 해서 다시 봤다. 뒤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신부님의 왼손에는 여전히 예수님이 서 계셨다. 신부님 제의 자락 뒤로는 성모님이 서 계시고….

옆에 앉은 자매가 혼자 중얼대는 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왜 그래요?”라고 묻는다.
“아니, 신부님 왼손 안에 예수님이 서 계셔요.”

옆에 있던 자매는 “어디요? 난 안 보여요”라고 말한다. 난 보이는데 자꾸 눈을 비볐다. 미사는 계속 진행되고 어느 틈엔가 예수님은 사라지셨다. 앞자리에 앉아서 미사를 드리시던 수녀님께선 나에게 미사 중에 조용히 하라는 주의까지 하셨다.

깜짝 데이트는 끝났다. “미사는 자신을 위한 미사가 되어야 하고 말과 행동은 복음을 기준으로 하라”는 신부님의 강론 말씀이 “회개하라” 외치는 소리처럼 들렸다. 통회의 기도를 바치고 고해성사를 길게 봤다.

내가 선택한 것은 십자가(세상에서 볼 때 어리석음)이다. 복음의 가치대로 살며 손해 보고, 바보같이 살아야 하는 게 주님이 주신 말씀이라 생각된다. 무수히 깨져야 한다고 하신 신부님의 말씀이 절절하게 공감이 되었다.

또한 “내 입을 통제하는 자가 인격자”라고 말씀하시면서 ‘한 마디 말’의 중요성도 일깨워 주셨던 말씀은 예수님과의 ‘깜짝 데이트’로 확실하게 가슴에 다가왔다. 이제는 사제에게 편하게 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예수님을 뵙듯이 경건하게 모시려고 한다.

회개하라 말씀하시는 재의 수요일이 곧 다가온다. 이어지는 설 명절에는 일가친척 앞에서 말조심하며 낮은 자세로 섬기고 주님의 말씀대로 낮은 자 되어 나누는 삶을 실천해 가족 모두에게 기쁜 명절이 되도록 하겠다. ‘이웃을 사랑하라’ 말하신 주님의 말씀을 일가친척에게 꼭 전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김선희 (베로니카) 시인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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