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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마당]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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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군에 입대했고 그곳에서 ‘오 병장’으로 군 복무 중이셨던 오웅진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선임하사와 오 병장으로, 오 신부님과 한 내무반에서 동고동락했습니다. 그때 당시 저는 개신교 신자였지만, 아내 이영자 데레사를 만나 1968년 세례를 받고 그해 9월 결혼했습니다. 오 신부님은 세례 때는 대부를, 결혼 때는 증인을 서줬습니다. 돌이켜보니, 이 모든 것이 섭리인 것만 같습니다.

성당활동과 봉사를 병행하며 생활했고 아들딸 4남매를 얻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시련이 찾아왔죠. 1976년 한 병사의 실수로 부대에 화재사고가 일어났고 선임하사였던 저는 모든 일에 책임을 지고 전역을 해야 했습니다.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났나… 억울하기도 하고 살길이 막막했습니다.

아내의 기도와 격려 덕에 힘을 얻고 난생처음 장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직접 포장마차를 만들고, 아내가 시집올 때 해온 이불 겉천을 뜯어 덮었습니다. 어설픈 시작이었지만 주변 분들의 도움으로 자리를 잡아, 가게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후 오 신부님의 권유로 적성공소 회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공소에는 주일 오후에 미사가 있었습니다. 사병 50~60명이 공소 미사에 참례했는데 장소가 협소한 데다 건물이 낡아 위험하기도 하여, 일부 신자들은 건물 밖에서 미사를 봉헌해야 했습니다. 성체도 신부님께서 문 앞으로 나와 주셔야 했지요. 공소를 다시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웃 신자들과 의견을 모았고 함께 모여 ‘성당을 우리 힘으로 짓게 해 달라’고 9일기도를 봉헌하기 시작했습니다. 부족한 공사 대금과 하나로 모이지 않는 의견….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기도를 멈추지는 않았습니다.

공소 헌금과 자매님들의 모금 등으로 힘을 합쳤지만 공사비에는 턱없이 부족했지요. 하지만 놀랍게도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습니다. 교구부터 주변 본당, 신부님, 신자들 등 십시일반 공사대금을 후원해 주셨습니다. 공소에 미사 보러 오시는 할머님들도 2만 원, 5만 원… 힘을 보태셨죠. 사실 저희 부부는 결혼하면서부터 주님의 집을 짓는데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마음으로 저축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저축도 전액 공사비로 봉헌했습니다.

1995년 5월, 드디어 축성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와주셨지요. 소머리를 사서 곰탕을 끓이는 등 정성을 다해 손님들을 대접했습니다.

이제 제 나이 80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이 모든 추억이 깃든 적성성당 바로 곁에 있습니다. 4남매 모두 장성했고, 손자 손녀 모두 성당에 열심히 다니고 있습니다. 저 역시 지금도 성당에 가서 미사 후 뒷정리를 돕고 연령회 부회장으로 활동하며 열심히 기도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여러 해가 지나 다시 돌아보아도 주님의 은총이 없었다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윤영일(바오로?의정부교구 적성본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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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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