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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기다림의 시간, 그리고 기도 / 이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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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승용차가 정문을 향해 가고 있다.

“어디로 가는 걸까?”

마치 나를 두고 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왠지 쓸쓸해진다. 저녁나절, 숲길을 산책하다가 언덕 위 벤치에 잠깐씩 앉아있을 때면 으레 오가는 차가 눈에 들어오는 광경인데, 멀리 사라져가는 차를 볼 때마다 쓸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인지 모른다. 소녀도 아닌 이 나이에 감상적이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하긴 젊었을 때도 그랬다. 여행 중에 잠깐 만난 사람이 “저는 오늘 떠납니다” 하고 트렁크를 끌고 나가는 것을 보면, 나를 두고 먼저 가는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이 들곤 했다. 만난 지 며칠 안 되는 사람이라 벌써 정이 들었을 이도 없는데 내가 남겨졌다는 생각이 들어서일 게다. ‘남겨진다는 것’은 쓸쓸한 일이다.

용인에 있는 시니어타운에 들어온 지 만 3년이 되었다. 이곳에서 무척 만족스럽고 즐겁게 살고 있는데도 문득문득 쓸쓸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자고 일어났을 때, 엄마가 눈에 보이지 않아서 흐느껴 울었던, 어렸을 적의 그런 쓸쓸한 감정이 순간 스칠 때가 있다. 나이 때문이겠지. 나이를 먹는다는 자체가 쓸쓸한 일이 아닌가. 그러나 나이를 먹으면 웃을 일도 많다.

이야기를 하다가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서 웃고, 금방 말해 놓고 딴청을 하는 바람에 어이없어서 웃고, 엘리베이터를 타고선 “내가 어디를 가려고 탔지?” 해서 깔깔대며 웃는다.

나이를 먹으면 아이가 된다는 말이 참으로 실감 날 때가 많다. 아이들의 고집만큼 노인들의 고집도 만만치 않다. 의사가 고쳐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집스럽게 찾아가서 똑같은 말을 하니까,

“그건, 고칠 수 없는 병입니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겁니다”라는 의사의 말에 노인들은 섭섭해서,

“빨리 죽는 수밖에 없지” 하고 아이들같이 토라진다. 그러다가 옆의 사람이 “그러게 말이야, 빨리 죽어야지” 하고 동조를 하면 그제야 풀어져서 웃고 깔깔댄다.

시니어타운의 생활은 기다림의 생활이다. 검은 승용차가 정문을 향해 나가는 것을 바라보며 쓸쓸한 생각이 드는 것도 내가 이 세상의 정문을 나가는 날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기다림의 생활을 하면서 나는 잠자리에 들 때마다 기도를 한다.

예수 마리아 요셉이여, 내 마음과 영혼을 당신에게 맡기나이다.
예수 마리아 요셉이여, 임종의 고통 속에서 나를 도와주소서.

오늘도 나는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면서 기도를 마쳤다.
‘마지막 숨을 편안히 거두게 하소서’라고.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경희 (크리스티나)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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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8-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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