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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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내 돈 주고 샀으니 이 땅도, 저 목련도 내 것? / 김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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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년 전 초등학생 시절, 이층집에 사는 아이가 있으면 부잣집이라고 다들 부러워했습니다. 김치나 멸치, ‘덴뿌라’반찬이 고작인 우리와 달리 그 친구 도시락에는 소시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부잣집은 아니래도 집집마다 마당 한구석 조그만 꽃밭이 있었고 봉숭아, 나팔꽃이며 채송화, 금전화가 철따라 제 맵시를 뽐냈습니다.

저녁에는 동네 아이들이 골목에 모여 다방구며 술래잡기하다가 계단에 주르르 앉아 “맹호부대 용사들아”같은 노래들을 목청 놓아 부르곤 했지요.

이제 그때보다 국민소득이 백 배, 이백 배 늘었지만 골목도 마당도 꽃밭도 노랫소리도 다 사라졌습니다. 꽃밭 대신 원룸 하나라도 더 늘리려 하고, 나 스스로 노래 부르는 대신 한류 가수들의 현란한 몸동작을 멍청하게 지켜보는 구경꾼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게 다 ‘돈’ 때문입니다. 어려운 말로 자본주의가 사람을, 노래를, 꽃밭을 먹어 치운 겁니다.

요즈음 헌법 개정 논의가 한창입니다. ‘헌법?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 있노.’ 이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우리말에‘저 사람은 법 없이도 살 사람’이란 표현도 있습니다. 나도 그런 분들을 금방 떠올릴 수 있습니다. 은퇴하신 인천 노(老) 신부님, 월 30만 원 수입으로 평화 운동에 전념하는 여성 활동가, 우리 동네 쓰레기 줍는 할머니…. 하지만 ‘법 없이도 살 사람’할 때의 법이란 주로 나쁜 행위를 금지하는 형법이나 각종 규제법을 말하는 거고, 현실에서 법은 우리의 모든 걸 결정짓습니다.

꼬불꼬불 골목길이 있는 동네를 재개발해서 나오는 수익을 집주인 몫으로 돌리지 않고 모두 세금으로 환수해 노인과 아동 복지에 쓰도록 법을 만든다면 아마도 마당에 봉숭아 피어 있는 단독 주택을 헐고 아파트며 연립주택 콘크리트 숲으로 뒤덮는 일들은 줄어들 것입니다. 최저임금을 시급 5000원으로 하느냐, 만 원으로 하느냐에 따라 노동자와 고용주의 이해관계가 크게 달라집니다. 대기업도 어묵이나 두부 같은 걸 만들어 팔 수 있게 할 것인지, 동네슈퍼 보호를 위해서 백화점 영업시간을 규제할 것인지.

이렇게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나라 법의 근본이 바로 헌법입니다. 그러니 헌법은 ‘없어도 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의 목숨 줄입니다.

헌법 개정 주요 쟁점인 ‘토지 공개념’도 그렇습니다. 이에 반대해 토지의 사적 소유는 절대권이라는 주장이 있습니다. 하지만 조선시대까지 모든 땅은 기본적으로 나라 것이었습니다. 현재 중국이 이와 비슷합니다. 땅은 나라 거고 그 위에 집 짓고 살 권리만 개인에게 허용합니다.

요즈음 우리 집 마당에는 진달래, 벚꽃 지고 하얀 목련꽃들이 절반쯤 남아 있고 수선화가 노랗게 피어 있습니다. 내가 이 마당을 지어낸 것도 아니고 이 나무와 꽃들을 피어나게 한 것도 아닌데, 등기부에는 이 땅과 그 ‘부속물’들인 나무와 꽃들이 내 것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내가 돈을 내고 샀다는 이유로 40억 년 전 생성된 지구의 일부인 이 땅이, 수십 억년 이어져 온 고된 생존 투쟁과 진화의 결과물인 저 목련이 ‘내 것’이다?

‘내 돈 주고 샀으니 내 것이다’라며 많은 이들이 당연시해 온 사소유권 절대라는 생각도 사실 곰곰 따져보면 그리 당연한 게 아닙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69항에는 이렇게 정답이 나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모든 사람과 모든 민족이 사용하도록 창조하셨다. 따라서 창조된 재화는 사랑을 동반하는 정의에 따라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풍부하게 돌아가야 한다.”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합법적으로 소유하는 외적 사물을 자기 소유물만이 아니라 공유물로도 여겨야 하며, 그러한 의식에서 자신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익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습니다. 내 이름으로 등기된 이 땅과 저 목련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오롯이 내 것인 게 아니고, 공동선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내 것입니다.

헌법을 이런 「사목헌장」의 정신에 부합하게 고치는 일은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책임이며 의무입니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 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요한) 변호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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