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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바라는 대로 / 우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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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잘 몰랐습니다. 여러 곳을 두루 둘러보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당신이 한자리에 머물며 깊이 여행하기를 선호한다는 것을 그땐 잘 몰랐습니다. ‘조금만 더 부지런히 움직이면 더 많은 것을 담아갈 수 있는데, 그저 한두 군데 머물러 고여 여행을 나무늘보 식으로 할 게 뭐람’하고 속으로 생각하기도 했지요.

미국 아이오와주 동부에 있는 아이오와시티에서 오대호 중 하나인 이리호를 거쳐 나이아가라 폭포의 장관을 캐나다 쪽에서 조망한 다음 미국 보스턴으로 향하는 차 안이었던 것 같습니다.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었지요.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보스턴까지는 아주 먼 거리였습니다. 계속 운전하던 나로서는 어쩌면 운전하는 내가 제일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당신은 “옆에서 앉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건지 아느냐”고 그랬지요. 그러면서 던진 말, “여행하다 늙는다.” 순간 귀를 의심하기도 했어요. 아직은 젊을 때였기에….

그때라도 알아차렸어야 했어요. 그로부터 몇 달 후 우리는 미국 서부를 한 달 동안 자동차로 여행한 적이 있지요. 아이오와시티에서 출발해 덴버, 콜로라도스프링스, 산타페, 세도나, 샌디에고, 애너하임, 로스앤젤레스, 그랜드캐니언, 요세미티, 버클리, 포틀랜드, 시애틀, 옐로스톤 등지를 둘러왔던 여정이었어요. 우리가 함께 했던 가장 긴 자동차 여행이었지요.

여름이었고 워낙 긴 시간과 공간을 함께 했던 만큼 추억도 많이 일궜지만, 위기 상황도 없지 않았어요. 차마 떠올리기 아찔한 순간. 시애틀에 도착한 밤이었어요. 버클리에서 포틀랜드로 이동하던 중 우리 차에 이상이 생겨 시간을 지체하는 바람에 예약했던 호텔을 포기하고 중간에 새로운 숙소에서 머물고 떠난 다음 날이었어요. 너무 힘들어하는 당신 때문에 전날 내가 가고 싶었던 호텔까지 이르지 못한 채 중도에 머문 것이 무척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 보면 특별한 어떤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여행에 나선 지 20일이 넘은 때였으니, 어쩌면 피로 때문이었을까요. 시애틀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마치 시애틀에 싸우러 도착한 사람들 같았어요.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거짓말처럼 떠오르지 않네요. 그렇지만 서로 자기 식대로 판단하면서, 상처주고 상처받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전무후무할 정도로 마구. 주님은 “서로 심판하지 말라”고 하셨거늘, 참 철없을 때였지요.

그때라도 알았더라면 가장 빠른 때였겠지요. 참으로 많은 시간들을 바쁘다는 핑계로 내 스타일대로 해왔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밤늦은 시간에 글 쓰는 버릇이 있던 올빼미형인 나로서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종달새형인 당신과 일상의 리듬을 조율하는 것에서도 무척 서툴렀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을까요. 당신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어요. “내가 원하는 것을 해 주세요.” 내 딴에는 당신을 위한다고 하는 일이 불편하거나 원하지 않는 걸 수도 있다는 것, 소통이나 교감에 실패한 사례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거듭 돌이키게 된 그 말을 어쩌면 당신은 그 이전부터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고 보니 성경 말씀이었네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마태 7,12) 그래요. 허물이 많았어요. 미안해요. 더 깊이 교감하며 당신이 바라는 것에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애쓸게요. 당신이 원하는 기쁨, 평화, 희망까지.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찬제 (프란치스코) 문학평론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8-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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