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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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편지] 아는 것이 병이다 / 박봉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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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글자를 아는 것이 오히려 근심된다.’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혹은 알아도 제대로 알지 못해서 쓸데없는 걱정도 그만큼 많다는 말이다.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식(蘇軾) 소동파의 「석창서취묵당」(石蒼舒醉墨堂)에 나오는 시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국지의 인물들인 유비와 조조, 서서에 관한 이야기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다.

30여 년의 오랜 객지 생활을 끝내고 귀향해 어릴 적 친한 초등학교 동무를 만났다. 친구는 신앙심이 남달랐다. 내 기억에 그는 청년 시기까지도 온통 성경을 들고 다니는 모습과 교회에 관련된 이야기로 점철돼 있다.

친구에게 요즘도 교회에 열심히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뜻밖에도 이제는 다니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유인즉슨 교회에 믿음이 가지 않고 모두가 거짓이라는 것이다. 기가 차서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후로 나는 그 친구와 가끔 만나도 정치와 종교 얘기는 하지 않는다. 성향이 달라 민감한 부분에서는 서로 다툴 여지가 있어 친구를 잃을 것 같은 우려 때문이다.

친구도 나와 같은 마음일 것이다. 그래도 어쩌다 성경 얘기가 나오면 친구는 열변을 토한다. 성경 박사다. 모르는 게 없다. 성경을 한 번도 완독한 적이 없는 나는 친구의 박식하고 현란한 이야기에 그저 부끄럽게 듣기만 하는 입장이다. 한 번은 친구에게 “너 차라리 무슨 교주라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친구는 씩 웃고 말았다.

내가 서른 초반의 아주 오래전 이야기다. 시골의 어느 양계장에 출장을 갔는데 이웃 교회 목사님이 찾아오셨다. 기다려도 농장 주인은 오지 않고 그 목사님과 나는 마루에 걸터앉아 멍하니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알량한 지식으로 그 목사님께 물었다. “목사님, 우주의 만물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고 주관하신다는데 그 만물은 어떤 것입니까?” 질문에 좀 이상한 낌새를 느끼셨는지 목사님께서 선뜻 대답을 안 하시기에 재차 “우주의 모든 생명이나 물체 같은 뭐 그런 것이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하셨다. “그럼 바람이나 비, 번개 같은 자연현상도 다 주관하시느냐”고 물었다니 또 “그렇다”고 대답하셨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늘 궁금하던 질문을 던졌다. “그럼 교회에서는 왜 종탑 위에 피뢰침을 세우는지요? 만약에 하느님이 벼락을 치시면 거부할 수 있는 것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내 질문을 듣더니 목사님은 몇 마디 웅얼거리시더니 기분이 언짢으셨던지 비닐우산을 쓰고 그 길로 그냥 가버리셨다. 그때 나는 정말로 내가 성직자라면 오기로라도 교회에 피뢰침을 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래전 내가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천둥벌거숭이 적 이야기지만, 목사님을 골려 먹였다는 기억이 유리창에 낀 때처럼 늘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터무니없이 얕은 지식으로 의기양양하던 내 모습이 가끔 그때처럼 비가 오는 날이면 창피하고 초라하게 겹쳐 보인다.

그래서 ‘반성’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내 친구처럼 성경을 많이 알아도 믿음이 온전한 것이 아니고 나처럼 몰라도 무식한 것이 용감한 것이다. 우리 이웃들 중에는 “내가 성경을 조금 아는데”, “성경을 잘 아는데”라고 말하는 이들이 더러 있다. 성경을 많이 읽고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생명력 있고 굳은 믿음을 갖는 참 신앙인의 길임을 한 번쯤 묵상해 볼 일이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박봉준 (요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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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4-24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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