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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나는 밀, 너는 가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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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변호사, 나 평양에 다시 오고픈데 저 사람들이 안 받아 주겠지? 내가 처음 며칠 호텔방이며 식당 같은 데서 지들 욕한 거 다 도청했을 거 아냐?”

십수 년 전 남쪽 진보, 보수를 망라한 여러 단체 사람들이 북쪽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보수 성향의 그 신부님은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부터 사사건건 빨갱이 욕을 해댔습니다. 호텔에서 첫날밤을 지내고는 방 화장실 천정 한쪽이 위로 젖혀 있다면서 저놈들이 도청하는 게 틀림없다는 거였습니다. 그러던 신부님이 차츰 시간이 가면서 저들도 우리와 하나도 다를 게 없는 사람들이고 성심성의껏 잘 대접해 주는 걸 보면서 다시 오고 싶어진 겁니다. 사실 화장실 천정은 같은 방 동료가 담배 피다가 환기가 제대로 안 되자 젖혀 놓은 거였구요. 나는 신부님께 평양에 다시 올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줬습니다. ‘신부님, 도청당하는 그 화장실에 들어가셔서 ‘김정일 위원장 만세’ 하고 외치세요.’

그때 우리를 담당하던 북쪽 책임자를 나는 이리 놀려 먹었습니다. “당신이 여기선 겉과 속이 똑같이 빨간 토마토 빨갱이지만 남쪽에서 태어났더라면 딱 국가보안법 전문 공안검사를 했을 인상이야.”

그렇습니다. 저 북쪽 친구와 노신부님이 남과 북을 바꿔 태어났더라면 지금과는 정반대 입장에 서 있었을 수도 있을 겝니다.

입장. 서 있는 자리. 속해 있는 편. 우리는 늘 제가 어느 자리에 서 있느냐에 따라 편 가르기를 해서 상대방을 몰아댑니다. 없는 이들은 있는 것들이 세금도 제대로 안 낸다고 뭐라 하고, 있는 이들은 없는 것들이 불만만 많다고 뭐라 합니다. 젊은이들은 노인들을 꼰대들이라 비난하고, 노인들은 무책임하고 버릇없는 젊은 것들이라 비난합니다.

여자라 무시하고,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의 적이라 몰아세웁니다. 보수와 진보는 서로 상대방을 감옥에 보내기도 합니다.

전에 보수가 정권을 쥐었을 때 그저 ‘저 자가 우리 편이 아니다’ 싶으면 빨갱이 딱지를 붙여 헌법이 보장한 ‘적법절차’를 무시하고 감옥에 보낸 적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요. 요즈음 재심을 통해 이때 죽거나 감옥살이한 수많은 사람들의 무고함이 밝혀지고 있지요.

그런데 진보 정권에서도 언제부턴가 잘못된 걸 바로잡는다는 명분 아래 그 과정에서의 적법절차는 가벼이 여기는 게 아닌가 싶은 상황들이 여기저기 보입니다. 여론에 미투 가해자나 적폐 인물로 한번 낙인찍히면, 재판 등을 통해서 그 나름 억울함을 호소할 기회마저도 ‘2차 가해’나 ‘뻔뻔하다’는 등의 이유로 빼앗기기 일쑤입니다.

사실 무엇이 옳은지를 가려내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가라지를 거두어 내려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 13,29-3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지요. 밀과 가라지를 가르는 건 우리 몫이 아니고 하느님 몫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당신께서는 밀은 물론 가라지까지도 다 품어주실 겝니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주어진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하고, 그 기준은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 따라 다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걸 판가름하는 ‘절차’만은 어느 편에나 정의롭고 공정해야 합니다. 적법절차는 그 입장과 상관없이 우리 모두를 지켜주는 마지막 보루입니다.

남과 북, 진보와 보수, 부자와 빈자, 노인과 청년, 남자와 여자. 이런 입장 차이는 영원히 좁혀지기 힘든 게 우리네 삶의 슬프고도 냉엄한 현실입니다. 나는 밀이고 너는 가라지!

그래도 서로 다른 이들이 같이 살 수 있는 딱 한 가지 길은 역지사지(易之思之),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는 거겠지요.

예수님도 이리 가르쳐 주셨지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 우리는 서로 원하는 게 다를 수도 있으니 이 가르침을 이렇게 새겨들으면 어떨까요.

“너희는 남이 네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일을 남에게 하지 말라.”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김형태 (요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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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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