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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진단] 노벨상 증후군

이태하 (토마스,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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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하 (토마스, 세종대 교양학부 교수)




매년 노벨상이 발표되는 10월이 되면 우리 사회에는 노벨상 증후군이 나타난다. 올해도 역시 한국인 수상자가 있지 않을지가 언론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올해도 학수고대하던 수상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우리나라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원인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는 기사를 쏟아 놓기 시작했다. 중장기 과학기술 정책의 부재, 긴 호흡이 필요한 기초과학 분야의 지원 필요성, 창의력을 키우지 못하는 한국 교육의 문제점, 연구자들의 논문 쓰기 위주의 연구 관행 등이 줄줄이 도마 위에 올랐다. 이어서 노벨상이 한 나라의 국가 경쟁력을 보여주는 지표인양 호들갑을 떨며 국가의 앞날을 걱정하는 말로 대부분의 언론 기사들이 마무리된다. 과연 노벨상 수상자 수가 한 나라의 국력과 비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노벨상은 인류의 복지와 삶의 질을 향상한 공헌에 대해 수여되는 상이지만 수상 분야는 극히 일부분으로 제한돼 있다. 평화상을 비롯해 6개 분야에 대해서만 상이 수여될 뿐이며 과학기술 분야 수상은 물리, 화학, 생의학 단 세 개에 불과하다. 심지어 모든 과학의 토대라 할 수 있는 수학 분야에 대한 수상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노벨상 수상을 통해 한 나라 과학기술 분야의 경쟁력을 평가한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벨상 수상은 이뤄지지 않지만 인류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과학기술 분야는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런데도 단지 몇 개 분야에 대해서만 수상이 이루어지는 노벨상 수상 실적으로 한 나라의 과학기술력을 평가하려는 듯한 언론의 보도 태도는 분명 노벨상의 의미를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노벨상 수상을 근거로 한 나라의 국력을 논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이는 과거 올림픽 금메달 12개로 일약 우리나라가 선진국이라도 된 양 착각하던 때를 연상시킨다.

3~4년 전 우연히 텔레비전을 보다 영국 옥스퍼드 대학 총장이 우리나라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특강을 하는 것을 보게 됐다. 어떤 여학생이 질문을 했는데 그 학생의 질문은 사실 질문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주입식, 암기식 일변도 교육에 대한 일종의 자아비판이었고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옥스퍼드대 총장이 어떤 답변을 할지 대충 짐작이 됐다. 그런데 잠시 후 이어진 옥스퍼드대 총장의 답변은 아주 뜻밖이었다.

총장의 답변은 이랬다. “오늘날 한국이 이룬 경제 기적은 바로 학생이 지적하는 문제 많은 그 교육을 받은 세대가 이룬 것입니다.” 다른 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말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러다 보니 노벨상 관련 기사를 보다가 문득 그 말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교육이 이 여학생 말처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제가 많다는 그 교육의 힘으로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언론마다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우리 과학계의 당장 써먹기 쉬운 응용 위주의 연구 풍토 덕분에 우리는 단기간에 산업화에 성공을 거둬 오늘날 경제 규모 세계 12위, 수출 규모 6위의 경제 강국을 만들었다. 게다가 주입식, 암기식 교육은 창의력 교육의 장애 요인이 아니라 창의력의 밑거름이 되는 교육이며, 응용 연구를 통해 구축된 과학기술 인프라는 기초 연구의 인프라가 된다는 점을 돌아볼 때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노벨상을 향해 차근차근 준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조급증을 내지 않아도 때가 되면 노벨상 수상자가 생겨날 것이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고 해서 그것 때문에 우리나라가 갑자기 선진국 반열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지금과 같은 경제 강국이 된 것은 그동안 자신의 분야에서 묵묵히 독창적인 연구나 발명을 해온 많은 과학기술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노벨상 시즌인 10월만 되면 반복되는 거의 자학 수준의 자기비판 대신에 이들 이름 없는 과학기술인들을 찾아서 노벨상보다 더 빛나는 감사의 상을 안겨주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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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6-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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