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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칼럼] 다그치는 사랑 앞에서

윤재선 레오 보도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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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여 전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요한 세례자라는 세례명을 가진 재소자가 보내온 것이다. 무슨 편지인가 의아해 했는데 문득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가톨릭평화신문을 읽고 싶은데 그럴 형편이 되지 못하니 신문 몇 부만이라도 좀 보내달라는 간곡한 요청의 편지였다. 며칠 지나지 않아서 우편 소인이 찍힌 주소로 신문 2부를 보내드렸는데 답례로 감사 편지를 보내온 것이었다. 찬미 예수님!이라는 반가운 인사와 함께 시작되는 편지 곳곳엔 지난 삶에 대한 반성과 회한,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찬미의 마음이 구구절절 배어 있었다.



“사방이 가로막혀 있는 곳에서 빛바랜 옛 추억의 그리움과 아픔을, 흘러가는 세월에 묻으며 오직 주님을 바라보며, 하루하루를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중략) “하느님 말씀을 읽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예수님의 십자가 성혈로 저를 씻어주시기를 기도드리고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이 전하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영혼이 배부른데 어쩌면 이리 복되고 즐거운지요” “저도 이곳에서 열심히 선교해서 하느님을 기쁘게 하고 모두가 구원을 얻게 노력할 것입니다.” (생략)

이 편지 내용이 실린 신문을 받아보게 되는 날, 가톨릭 신앙을 가진 동료 재소자들과 함께 담소를 나누며 작은 위로라도 누렸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미처 허락을 구하지 못하고 편지글을 소개한 것을 양해해 주시리라 기대하면서.

요한 세례자 형제님으로부터 편지를 받고서 일주일쯤 지났을 때다. 이번에는 시각장애를 가진 자매님 한 분이 본사를 찾았다. 특별후원금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내심 좋은 취재다 싶어 잔뜩 기대하고 있었는데 허사였다. 이름도 금액도 알리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청탁이 있어서였다. 그런데 본사를 지척에 두고도 택시를 타고 꽤 먼 거리를 돌아오셨다는 얘기를 듣고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한편으론 미안하고 감사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지난 5월 28일 홍보 주일과 6월 18일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에 선교 후원 활동을 위해 대전 유성성당과 수원성지 북수동성당을 찾았다. 무엇이 그리 부끄러운지 후원금을 수줍게 내던지듯 건네주고 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채 손사래 치며 달아나버리는 신자가 있는가 하면 후원금을 낼 형편이 되지 않으니 대신 열심히 기도를 드리겠노라 다짐하며 약정 아닌 약정까지 해주시는 분들까지, 참으로 고맙고 고마운 분들 투성이다. 이름없는 천사들이다. 무엇이 이들을 고마운 존재로 만드는 걸까? 무엇이 이들을 수줍게 달아나게 하였을까? 문득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떠올려본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다그칩니다.’(2코린 5,14)

다그치는 사랑 앞에서 그들은 용기를 내어 손을 내민다. 내민 손을 행여나 그분이 볼까 봐 수줍게 거둔다. 거둔 손마저 부끄러워 재빨리 달음질친다. 가진 게 없으면 또 어쩌랴. 늘 함께하시는 성령께서 기도의 은총을 주시거늘. 기도 봉헌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사랑의 지고지순함이 아니던가.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었다는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헤아려본다.(1코린 9,22 참조)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존귀한 사람이 되겠다”는 재소자 요한 세례자 형제님의 다짐을 곱씹어본다. 참샘물이신 그리스도를 닮아있는 분들에게, 사랑이신 그분을 나누며 사는 평범한 은인들에게 어찌 고개 숙여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으랴.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1테살 5,16-18)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가슴에 철컥 내려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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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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