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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상과 ‘베트남 피에타’

이성훈 안셀모 경희대 공공대학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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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대통령’으로 높은 기대를 받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갑자기 베트남 정부로부터 유감 성명서가 전달됐다. 그리고 25년 전, 세상을 떠난 빌리 브란트가 다시 호명되고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지금은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빌리 브란트는 냉전 시대 평화의 아이콘이었다. 1970년 폴란드 바르샤바를 방문, 2차대전 희생자 추모비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하는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당시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다. 이 사진은 이후 가해국 국가 수반이 피해국에 어떤 태도로 다가가야 하는지를 보여준 모범이 됐다.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현충일 추념식에서 “베트남 참전 용사들의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조국 경제가 살아났다”며 “이국의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생긴 병과 후유 장해는 국가가 책임져야 할 부채인 만큼 합당하게 보답하고 예우하겠다”고 약속했다. 어찌 보면 상식적인 이 발언에 베트남 정부는 “한국 정부가 베트남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양국 우호와 협력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언행을 하지 않기를 요청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지나가는 설화 사건일 수도 있는 정부 해명에 위안부 소녀상을 제작한 김운성 조각가는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의 빌리 브란트가 되라”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김 조각가는 이 사건을 계기로 문재인 대통령에게 더욱 분명하게 베트남 정부와 국민에게 베트남 참전 중 우리나라 군인들이 저지른 양민 학살과 인권침해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김운성 작가는 부인 김서경 작가와 함께 베트남 전쟁 중 고통당한 어머니와 이름 없이 죽어간 아기들의 넋을 위로하고 이에 대한 사죄의 뜻을 담아 2016년 베트남 피에타상을 제작했다. 이어 이를 베트남에 설치하기로 했으나 박근혜 정부가 방해해 무산됐다고 한다. 베트남 피에타상은 현재 제주 강정 평화센터에 설치돼 있다. 피 흘리는 예수 시신을 무릎에 안은 성모 마리아를 형상화한 성 베드로대성전 내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작품과 맥락이 닿아 있다. 부부 조각가는 소녀상과 베트남 피에타상을 같은 마음으로 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위의 평가는 매우 달랐다. 소녀상을 제작했을 때는 많은 국민으로부터 ‘애국자’로 칭찬을 받았지만, 베트남 피에타상을 만들었을 때는 일부지만 ‘반역자’로 비판받았다.

위안부 소녀상에서 한국은 피해자, 일본은 가해자가 된다. 하지만 베트남 피에타상에서 베트남은 피해자, 한국은 가해자로 바뀐다. 인간관계뿐 아니라 국가 관계에서도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다. 이러한 이유로 현실 정치에서 피해자 인권은 국익과 이념에 의해 종종 왜곡돼 왔다. 피해자를 중심으로 생각하기보다 정치적 이득을 목적으로 판단하고 인권을 이중잣대로 이용하기 때문이다.

한ㆍ일간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현안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새로 임명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 중이다. 잘못된 협상은 당연히 다시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이전에 우리도 이중잣대로 인권을 대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반성할 필요가 있다. 베트남 피에타상은 위안부 문제 해결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해 주지 않을까 싶다.

마침 문재인 대통령은 7월 독일 함부르크에서 열릴 G20 정상회의 직전 베를린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어 11월에는 베트남 다낭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할 예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빌리 브란트에게 영감을 받아 베트남을 방문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가져 본다. 국내에서 인권 피해자를 대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진정성이 베트남 국민에게도 전달되기를 바란다. 11월 이전에 베트남 땅에 베트남 피에타상이 설치되고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해 조화를 바친다면, 베트남 국민들에게는 분명 진정성 있는 사죄가 되고 의미가 클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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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7-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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