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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酒님 찬미? 主님 찬양! / 하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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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오늘 강의 잘 들었습니다. 간단한 회식을 준비했으니 한잔하고 가시지요.”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의를 마친 후였다. 한 잔의 술을 권하는 형제님은 물론 나 역시 겸연쩍은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강의 주제가 다름 아닌 ‘알코올 중독’에 관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베풀고 나누는 것을 좋아하는 우리 교우들은 강사를 서운하게 돌려보내는 법이 없다. 뿐만 아니다. 교회 내 각종 모임과 회합 후 이어지는 이른바 ‘2차 주회’는 친교를 명목으로 공공연히 자리 잡았다. 때로는 본 모임보다 2차 주회에 더 많은 시간과 열정을 쏟는다.

몇 해 전 일이다. 내가 카프성모병원에 부임한다는 소식을 들은 중독학회 선배가 덕담을 건넸다. “가톨릭에서 중독자를 위한 병원을 운영한다니 너무 감사한 일이야! 그런데 천주교 신자들이 그렇게 술을 잘 마신다더군. 앞으로 할 일이 많겠어.” 순간 낯이 뜨거워졌다. 선배가 개신교 신자이기 때문에 괜히 배 아파서 하는 소리가 아니냐며 너스레를 떨어 넘겼다. 하지만 그저 웃어 넘길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소주 1병 이상의 주량을 가진 천주교인(39.3)의 비율이 개신교도(17.5)의 두 배가 넘고, 무교(36.1)인 사람보다도 높다는 통계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있다.

‘내 탓이오’를 읊조리며 죄를 고백하는 우리 교우들에게 음주 문제가 심해봐야 얼마나 심각하겠냐며 애써 자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술과 중독에 대한 편견에서 기인할 뿐이다. 중독은 고혈압과 당뇨처럼 누구나 걸릴 수 있는 흔한 질병이다. 우리나라 사람 중 고위험 음주자는 474만 명에 이른다. 수년 전 미국 정신의학회는 ‘알코올 중독’의 의학적 진단명을 ‘알코올 사용 장애’(alcohol use disorder)로 변경했다. 술을 사용함에 있어 나타나는 문제를 회피하지 말고 초기부터 주의를 기울이라는 의미이다. 자꾸 술 생각이 난다거나, 음주량이 늘고 혹은 술을 마시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든지, 술로 인해 실수를 하거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며, 필름이 끊긴다거나 하는 모습이 ‘알코올 사용 장애’의 대표적 증상이다. 이는 뇌가 망가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시사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중독자는 한 때 아무 문제없이 술을 즐겼던 사람들이다. 술을 자주 마시거나, 폭음을 반복하면 누구나 마음과 뇌의 손상을 피할 길이 없다. 의지가 약하고 인격 수양이 부족하여 중독자가 되는 것이 절대 아니다. 술을 절제하지 못하기 시작하면서 서서히 우울증이나 불면증 증세가 나타나고, 더불어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유난히 짜증을 부리고 예민한 사람으로 변해버린다. 대부분의 술 문제가 있는 사람들이 알코올성 치매로 이어지는 것이 다반사인데 현재까지 이를 온전히 치료할 방법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술 문제는 사전에 예방하고 조기에 치료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독을 연구하고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의사로서 과연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술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종종 궁금할 때가 있다. 독한 술은 마시지 않아서, 매일 마시지는 않아서, 술을 먹고 난폭한 행동은 하지 않으니 아직은 괜찮다며 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술이 주는 쾌락에 빠져 으스대는 우리의 모습은 그 옛날 바벨탑을 연상케 한다. 언젠가 무너져 내릴 가짜의 즐거움과 거짓된 위안, 껍데기 친교에 우리 스스로를 내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앞으로의 세상을 아름답고 진실하고 선하게 만들려면 시끄러워야 합니다. 그 의미는 많은 해악을 끼치는 기존 문화와 시대조류에 도전하고 맞서라는 것입니다. 술과 담배를 조금 하는 것이 무슨 문제냐는 문화에 용감하게 맞서는 것도 시끄럽게 만드는 것의 하나입니다.”

술로 사귄 친구보다 어린 시절 술 없이 만난 친구가 오래간다. 온전한 정신으로 마음을 열고 대화할 때가 더 진실한 법이다. 술은 모든 것을 쉽게 하는 대신에 본질에서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 주(酒)님을 통한 친교의 문화가, 교회의 진정한 주인이신 주(主)님으로부터 멀어지는 과오를 초래하지 않기를 오늘도 간절히 기도한다.


■ 외부 필진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종은(테오도시오) 카프성모병원 알코올치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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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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